정치 통일·외교·안보

[피크재팬 저자 인터뷰]"아베, 힘 잃고 있지만 대체 인물 안보여"

■'피크재팬' 저자 브래드 글로서먼

美 싱크탱크 CSIS 퍼시픽포럼 선임고문

"한일 관계 개선하면 대미영향력 커질 것"

"한일 신뢰 회복은 국익 우선 리더십으로"

"한미 동맹 중요…韓이 미국인 설득 필요"

"韓, 스스로 '고래 사이 새우' 인식말아야"

‘피크재팬’ 저자 브래드 글로서먼 미 CSIS 선임 고문/사진제공=김영사‘피크재팬’ 저자 브래드 글로서먼 미 CSIS 선임 고문/사진제공=김영사



“일본 내 코로나 확진자 수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초기 최악 상황을 면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모면했는지를 일본 정부도 모릅니다. 일본 경제는 곤경에 처했고, 중국은 점점 공격적이며 미국은 갈수록 이상하게 행동하는 와중에 일본의 정치 리더십은 약화하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이제 일본이 정점을 찍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세계 각국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특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코로나 19로 그간 야심 차게 추진해온 올림픽을 통한 경제 부흥 계획이 크게 뒤틀려 버렸기 때문이다. 1년 연기라고는 하나 장담하기는 어렵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리더십도 크게 흔들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의 변화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미, 한미일, 한중일 관계는 한국 외교에서 여전히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경제는 최근 일본 정치·사회를 분석한 책 ‘피크 재팬(Peak Japan, 김영사 펴냄)’을 낸 브래드 글로서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선임고문을 서면 인터뷰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일본에 오래 체류하면서 마이니치신문 기자, 재팬타임스 논설위원, 다마대학교 형성전략연구소(CRS) 부소장 등도 역임한 바 있다. 그에게 현재 일본 상황과 한일 관계, 한미일 관계 등을 물었다.

마스크를 쓴 일본 게이샤들이 지난 13일 도쿄 시내를 걸어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마스크를 쓴 일본 게이샤들이 지난 13일 도쿄 시내를 걸어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 19 발발 이후 일본 사회를 진단해 주십시오.

일본의 코로나 대응은 과하게 변덕스러웠습니다. 먼저 짚어야 할 점은, 일본이 지구에서 가장 고령화 된 국가로서 고령자에게 특히 치명적인 전염병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달리 일본 정부의 힘은 제한돼 있어 도시 봉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시민들의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기성세대와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 간 갈등이, 건강을 우선시하는 사람과 경제적 이익을 걱정하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만국 공통의 긴장과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코로나 사태 이전의 경제 침체로 인해 이런 문제가 더욱 악화했습니다. 또 시진핑 중국 주석이 4월 일본을 공식방문하려던 일정이 연기되고 또 취소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아베 정권이 도모했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 노력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이후 일본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홍콩 사태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경직됐고, 영해 침범과 같은 전반적으로 더욱 공격적인 외교 정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일본의 좌절감이 더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치권에 조만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조만간’을 물으신다면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분명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일당 체제가 굳어지고 나쁜 버릇을 다시 보이는 현상이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정치 관료들은 옛 관습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 차원에선 좋지 않은 일입니다.

(아베가 물러났을 때) 그 빈자리가 무엇으로 채워지고, 정치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권력층 사이에서 균열이 발견될 것은 명백합니다. 문제는 현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서도 아베를 대체할 좋은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일본 시민들이 야당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슈퍼마리오 복장을 하고 깜짝 등장해 2020 도쿄 올림픽을 홍보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슈퍼마리오 복장을 하고 깜짝 등장해 2020 도쿄 올림픽을 홍보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 화이트리스트 배제(수출 규제), 한일 지소미아 갈등 등 악화일로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본이 한국의 G7 참여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아직 양국이 협력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개인의 정치 욕망보다는 국가 이익을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관계 개선의 첫 번째 단추는 무역 분쟁 해소입니다. WTO 재판을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무너진 WTO 사법 시스템 안에서 온전한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순 없지만 WTO 재판은 두 나라 모두에게 시간을 벌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결국 양 정부 간의 신뢰 부족입니다. 이 신뢰는 반드시 다시 재건돼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자신을 무시하고 과거 문제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고, 일본은 한국이 계속 도덕적 우위를 점령하고 싶어 하며 일본을 방어적으로 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문재인 대통령이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 주길 바랍니다. 일본은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문 대통령이 “성 노예를 향한 대법원의 결정은 받아들이지만, 이를 강제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반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관계 개선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이후 일본도 체면을 지키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대일 관계 외에 미중 갈등도 한국에는 큰 문제입니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외교 안보 전략은 무엇일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해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가장 큰 실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본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강력한 한일 관계를 형성하면 양국 모두 더 큰 대미 영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고래 사이의 새우’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교적 많은 외교 관련 부서를 운영하고 있음을 인식하며 외교 정책에 보다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을 대상으로 경제 보복, 즉 주요 수출 품목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단행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 유효했다고 평가하십니까.

한국에 대해 보복한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국가 안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일본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대응은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이며 궁극적으로 자해로 상처를 입은 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의 사우쓰론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의 사우쓰론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주한미군 철수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행해진다면) 실수가 될 것입니다. 방위비 분담 문제는 이제 미국의 전 세계 모든 동맹이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중요한 문제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지극히 좁은 시야로 동맹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안보국 간의 역할, 사명, 책임감에 대해 재조정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먼저 동맹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합니다. 미국은 이 점에 있어 매우 느립니다. 동맹국들은 그들이 상호 책임을 지고, 사명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고 미국 대중을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종종 동맹국 정부와 이야기할 때, 마치 동맹 문제가 그들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며 미국이 자국민들에게 동맹의 필요성을 주장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일반 미국 시민들에게 동맹 관계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동맹국들이 나서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안보 파트너십을 함께 홍보해야 합니다.

-최근 존 볼턴의 회고록이 화제가 됐습니다. 책 내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 책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사실, 그가 말한 것 중에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은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애에 빠져 있고 자신에게만 몰두하며 무지하고 심통을 부립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과 국가의 관심을 구별할 줄도 모릅니다.

걱정스러운 건 백악관의 합리적 정책 결정 과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볼턴 같은 사람이 권력에 그만큼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불안의 요소입니다. 그는 백악관에 있는 동안 자신만의 의제를 홍보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이 트럼프 정부를 통틀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짓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모두 트럼프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해야 합니다. 그가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다고 해서 이 모든 문제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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