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금융허브 한다며 국책은행 지방이전 움직임…시대착오적 발상

도쿄상하이 등 '홍콩 빈자리' 호시탐탐…한국만 역주행

서울 국제금융센터지수 지금도 하위권…이전 땐 더 멀어져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 완전히 포기하자는 것" 반발 거세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왼쪽)과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연합뉴스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왼쪽)과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연합뉴스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금융경쟁력 강화는커녕 정치 도구로만 활용하려는 당정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이슈로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서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싱가포르와 도쿄·상하이 등 주요 도시들이 금융경쟁력을 결집해 홍콩의 빈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한국만 이 같은 흐름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의 금융경쟁력이 다른 주요 도시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주요 국책은행들까지 지방으로 분산된다면 인재유출과 집적효과 약화로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오랜 기간 아시아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한 홍콩은 금융 부문의 인적·물적 자원을 집결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국 본토와 서방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금융 인프라가 조성되면서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서울은 지리적 이점상 아시아 금융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지방 이전설은 이 같은 평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글로벌 주요 도시들이 금융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천명하고 집적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라는 정치적 논리 속에 금융을 도구화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방과 중국을 연결할 ‘제2의 홍콩’ 지위를 두고 아시아권 도시들의 각축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울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싱가포르·도쿄 등 금융도시들은 정책금융기관을 수도에 집결해 금융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강제로 국책금융기관을 이전하거나 이전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금융경쟁력을 키워 헥시트로 빠져나가는 서방 자본을 끌어오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서울은 지난 2015년 이후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금융기관들이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금융경쟁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다. 서울의 지난해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는 36위로 싱가포르(4위)와 도쿄(6위)보다도 한참 뒤떨어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방 이전설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국책은행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국책은행 지방이전설은 이전부터 숱하게 불거졌지만 이번에는 이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거대 여당이 형성되면서 여당이 주장해온 지역균형발전에 힘을 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뭉친 국책은행 이전 반대 태스크포스(TF)는 24일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 국책은행 이전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TF는 “서방의 투자자금이 홍콩에서 이탈하고 있는 헥시트 국면에서 수도 서울조차 홍콩 대체지로 부상하지 못해 도쿄·싱가포르에 밀리고 있다”며 “국책은행 지방 이전을 고집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중심지 정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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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은행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지방 이전은 금융 자체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1970~1980년대 개발시대처럼 금융을 산업 뒷단에서 돈줄 역할을 하는 도구로만 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인데 금융산업으로 경제 발전을 이끌겠다는 고민보다는 경쟁력을 저하하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은 노조 관계자도 “수은의 경우 채권을 발행해 수출하는 기업에 금융을 제공하는 기관인데 지방으로 가면 조달비용이 높아지면서 결국 기업에 비용 상승분을 전가할 수밖에 없다”며 “또 개발도상국 유상원조를 위한 대외경제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지방으로 간다면 각국 대사들과도 긴밀한 소통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지방으로 내려간 주요 금융 공공기관들의 업무 비효율이 상당하다는 점도 지방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로 꼽힌다. 금융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국책은행 지방 이전의 타당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공공기관 전체 출장 횟수는 28.3% 증가했고 출장비는 36.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방 이전에 따른 자발적 퇴직 증가로 인력 수급 문제가 커졌고 비수도권 이전으로 사업경쟁력이 약화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언택트 시대라고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업무상 직접 대면이 필요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또 지방 이전으로 고급 인력들이 이탈하는 현상도 나타나 개별 기관의 경쟁력도 저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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