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지난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인사청문회가 12시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친북 성향 청년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인 이 후보자의 사상 문제와 아들의 병역 문제 등을 두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외통위는 이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전날 열린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발해 회의장을 퇴장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이 후보자를 낙마시킬 결정적 ‘한 방’이 없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채택된 보고서는 국회의장과 본회의에 보고된 뒤 청문경과보고서 형식으로 대통령에게 송부됩니다.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 후보자는 이르면 27일께 통일부 장관으로 임기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먹는 것' '아픈 것' '보고싶은 것' |
관심은 이 후보자가 북한의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험악해진 남북관계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쏠립니다.
단서는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밝힌 모두발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해야 하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과감히 결단하고 쉼 없이 부단히 시도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며 “북미관계에도 보다 건설적 해법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자 해결자로서 역할을 찾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 후보자는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과 같은 인도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분리해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먹는 것과 아픈 것’은 대북 식량 및 방역 지원을 의미하고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은 이산가족 상봉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에 한해서는 반대하지 않고 있는 만큼 이 후보자의 구상은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 '백두산 물과 대동강 술' |
이 후보자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금강산과 백두산의 물, 대동강의 술을 우리의 쌀, 의약품과 바꾸는 작은 교역을 시작하면 더 큰 교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식량과 의약품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같은 형태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소규모 교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위반으로 규정한 벌크캐시(대규모 현금) 유입 조항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들 물품을 운송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트럭을 이용한 육로 운반이나 선박 및 항공기를 통한 운송은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앞서 정부가 지난해 타미플루를 북한에 지원하려 했을 때도 외교가에서는 이를 운송하기 위한 트럭 수송이 제재 위반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오갔습니다. 2017년 말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르면 북한의 수출 금지 품목에 식료품, 농산품, 기계류, 전자기기, 토석류, 목재류, 선박 등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트럭은 군용 전환 우려가 있어 대북 반입 금지 물품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선박 및 항공기를 통한 운송도 미국이 독자 대북제재의 대상으로 규정해 놓은 상태라 쉽지 않습니다.
━ 김정은, 응답할까 |
북한은 지난해 2월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의사에도 불구하고 남측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공동선언 등에서 합의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며 거친 언사를 쏟아냈습니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내부에서 독감이 유행했음에도 남측의 타미플루 20만 명분의 수령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이는 결국 북한이 원하는 것이 일시적 대북지원보다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 남한의 대북제재 해제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북한의 속내를 잘 알고 있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22일 “북한은 KTX 급 철도를 요구한다”며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올해 말, 어렵다면 내년이라도 철도 현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남북철도 협력을 주장한 것도 북한이 원하는 것이 경제 지원보다 발전에 있음을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