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 23일 뽑은 대법관 최종후보는 이흥구(57·연수원22기) 부산고법 부장판사, 천대엽(56·연수원 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배기열(54·연수원 17기) 서울행정법원장이다. 세 사람 모두 사법행정 경력이 없는 정통 법관 출신이다. 애초 1차 후보자 30인부터 다양성과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30명 중 23명이 법관 출신이었으며, 서울대 출신이 아닌 후보자는 3명뿐이었다. 평균 나이도 55.5세였다. 여성 후보자는 이 중 3명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김경란 특허법원 부장판사가 최종적으로 고사하면서 2명으로 줄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기성 주류 법관 위주의 후보 추천, 대법원장과 법조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후보추천위 제도에서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유감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 운동권 출신 이 부장판사가 최종후보에 올라 이례적이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85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깃발’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 고무찬양)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용공조작 사건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번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은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검증의 주안점은 성범죄였다. 권 대법관이 성범죄 사건을 판단할 땐 피해자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성 인지 감수성’을 처음으로 판시했기 때문이었다.
방아쇠는 국제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해 달라는 요청을 불허한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가 당겼다. 공교롭게도 강 부장판사가 대법관 1차 후보군에 들어가 있었다. 그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고, 5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다른 대법관 후보들이 성범죄에 어떻게 판결했는지도 함께 딸려 나왔다.
결국 ‘#대법관후보검증’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검증 글들이 올라왔다. 한규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35세 보습학원 원장이 10세 여아를 강간한 사건을 상호 동의 하에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형을 징역 8년에서 3년으로 감형한 점이 지적됐다. 이창한 제주지방법원장의 경우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장애인 성폭력 사건 항소심 재판 과정서 여성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허부열 수원지방법원장은 2015년 전 여자친구를 칼로 위협하고 수차례 성폭행한 남성에 대해 피해자와 몇 개월간 동거한 적이 있어 ‘집착에 이유가 있다’는 이유로 감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용석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성희롱으로 해임된 대학교수의 교원소청심사청구재판에서 해임을 취소한 점이 부각됐다. 권 대법관이 성 인지 감수성 부족을 문제 삼은 사건이다. 반면 김종호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013년 성폭력 피해자 인권보호 우수 사례로 선정된 사실이 알려지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들 모두 대법관 최종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이런 검증 열기가 닿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후보추천위에 참여한 인사들 상당수가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자체를 몰랐다. 한 외부 추천위원은 “강 부장판사의 판결에 비판여론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후보 판사들의 경력까지 도마에 오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부 추천위원도 “후보추천위 당일 제시된 자료를 보고 판단할 일”이라며 검증 시도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고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후보추천위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 위원’이 1명 참여했다. 하지만 외부의 검증 움직임을 알지는 못했던 걸로 전해졌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후보자들이 과거 내린 판결이나 논문, 언론 기고 등을 보고 판단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판사들의 판결을 두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건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어서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했다.
대법관 후보 추천 결과가 ‘서오남’을 못 벗어나는 데는 추천 과정에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1차 후보자가 공개된 후 의견을 수렴한 기간은 휴일 포함 13일에 불과했다. 최종 후보자 3인에 대한 국민의 의견 개진 기간은 1주일뿐이다. 다양한 의견을 받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참여연대는 “대법원이 공개한 후보자들의 판결은 4~5건에 불과하고, 대법관 후보추천위가 판결 내용에 대해 어떤 검증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며 “후보추천위 회의는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단 한차례 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회의내용은 외부로 공개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