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미래통합당의 반발 속에 결국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채택됐다. 여당의 수적 우위 속에 예상대로 현직 의원 출신 ‘불패’ 신화가 이어졌다. 여야 합의 없이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여대야소가 된 21대 국회 이후 처음이다. 태영호 통합당 의원 등이 촉발한 ‘사상 검증’ 논란이 예기치 않게 모든 청문회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이에 휩쓸린 야당은 이 후보자의 ‘부모찬스’, ‘서울시 특혜’ 논란 등에 대해선 제대로 질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 임명을 거쳐 이르면 27일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중량급 정치인인 그가 학자 출신인 전임 김연철 장관과는 뭔가 다른 대북정책 활로를 뚫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태영호 ‘사상검증’ 공방에 휩쓸린 청문회
지난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사상 전향을 한 게 맞느냐”는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거듭된 질문과 이 후보자의 강한 반발이 최대 화제가 됐다. 태 의원은 당시 “나는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사상 전향을 검증했는데 이 후보자는 언제 사상 전향을 했는지 찾을 수 없다”고 물었고 이 후보자는 이에 “사상 전향이라는 것은 태 의원처럼 북에서 남으로 온 분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라며 “태 의원이 남쪽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태 의원이 또 “1980년대 북한에서는 남한에 주체사상 신봉자가 많다고 했다”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직 구성원들은 매일 아침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남조선을 미제에서 해방하기 위한 충성 교리를 다진다고 했다더라”라고 질문을 던지자 이 후보자는 “김일성 사진에 충성 맹세를 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한 일은 내가 아는 한 없었다”고 말했다. 태 의원이 “북한의 가짜뉴스였다는 말이냐”라고 묻자 “근데 뭐... 과장된 이야기다, 이렇게 본다”고 답했다. 아직도 주체사상을 신봉하느냐는 질문에는 “그 당시에도 신봉자는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라며 사상 전향을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논쟁이 이어지자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는 4선 의원에 대한민국 장관 후보자인데 국회를 모욕하는 행위”라며 이 후보자를 엄호했다.
이 후보자는 박진 통합당 의원이 ‘이승만은 괴뢰정권’ ‘혁명 주체는 수령·당·대중의 삼위일체’ 등의 표현이 나오는 문건을 거론하자 “내가 작성한 게 아니다”라며 “이승만 정권이 괴뢰정권인지는 단정할 수 없고 여러 관련 의견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국부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돼야 마땅하다”는 의견도 냈다.
이날 태 의원의 발언은 곧바로 정쟁 요소가 됐다. 여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다른 논란보다도 태 의원의 ‘사상전향’ 발언에 집중적으로 외곽 지원 사격에 나섰다.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어이가 없다”고 반응했고, 김태년 대표는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반격했다. 문정복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변절자의 발악”이라고 적었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하기도 했다. 김기현 통합당 의원은 이에 대해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 후보자가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됐을 일”이라고 반박했다.
野, ‘부모찬스’ ‘서울시 특혜’ 등은 묻지도 못해
관심의 초점이 이 후보자의 ‘사상 검증’으로 몰리면서 야당 측은 다른 의혹에 대해선 제대로 묻지도 못한 채 청문회를 마쳤다. 특히 이 후보자 아들이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파티)’이라는 대안학교가 설립되기 전부터 예비학생 과정을 밟았고 해당 기관이 아들 입학 전에 이미 스위스 편입 협약까지 맺어 이 후보자 아내가 이를 해외 학위 우회로로 활용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언론 보도들을 통해 제기됐음에도 야당은 한 마디 의문도 제기하지 못했다. 이 후보자 아내는 아들 유학 직전인 2017년부터 이 기관 이사를 지냈는데, 2014년부터 이미 이 기관과 연계된 음식점 이사장을 맡았고 2015년부터는 자신의 재단과 학교 간 각종 협력 프로젝트를 펼치는 등 그전부터 아들 학교에 깊숙이 관여한 듯한 정황이 언론 보도로 곳곳에서 포착됐다. 야당은 또 이 후보자 아내가 서울시로부터 억대 보조금을 받았다는 의혹과 아들이 서울문화재단에서 입찰 없이 디자인 관련 용역을 따냈다는 의혹에 관해서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가족 의혹과 관련해서는 외려 여당이 이 후보자를 대신해 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익명을 요구했다는’ 스위스 바젤디자인학교의 한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아들 편입 과정에 부정이나 특혜 자체가 없었다”고 일축했다. 그는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도 “청문회장에서 야당의 제대로 된 질의가 하나도 없었다”며 “애초부터 무리한 흠집 내기”라고 규정했다. 익명의 교수를 인용한 데다 언론의 의문제기를 모두 아우르는 해명도 아니었지만 “청문회장에서 야당의 제대로 된 문제 제기가 없었다”는 지적만큼은 틀리지 않았다. 김기현 통합당 의원은 이에 대해 같은 방송에서 “이 후보자가 유학 추천서를 제출해야 의혹이 해소된다”고 밝혔다.
李 “나와 아들 군대 안 가 젊은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다만 아들 병역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공방이 있었다. 청문회장에는 이른바 ‘맥주 한 박스’ 영상에서 아들이 든 물통 무게 40.96㎏를 재현한 양동이까지 등장했다.
외통위 야당 간사인 김석기 통합당 의원이 “허리통증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면 무거운 짐은 어떻게 자유자재로 드느냐”고 따지자 이 후보자는 “재검에서도 5급 면제 판정을 받았다”며 발끈했다. 특히 김기현 통합당 의원 등이 아들의 병역 면제를 증명할 자료를 내 달라고 추궁하자 신경전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후보자는 “그 진료 자료를 왜 받아보려 하느냐”며 “아버지 된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대를 이어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프레임’”이라며 “아들을 면제받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엔 정말 동의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이 후보자는 아들의 병역 면제 사유에 대해 “일상적 생활은 가능하지만 무리하는 부분이 어려워서 군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며 “내 기억엔 (아들이) 2015년부터 군대에 가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석기 의원이 “‘솔직히 일상생활이 가능하면 사회복무요원이라도 해야지’ ‘위선도 저 정도면 예술의 경지다’ ‘고위층 자제는 척추염 걸리고도 레이싱도 하고 면제도 받고 박탈감이 심하다’는 댓글이 있다”고 소개하며 “젊은 청년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자 이 후보자는 “저도 군대를 못 갔지만, 아들도 못 간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지금도 군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청문회 이후인 24일에도 추가 병역 증빙자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단체로 전체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김영호, 본지 기사 두고 “조국 프레임 연상” 흥분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외통위 여당 간사인 김영호 민주당 의원이 본지 보도들 여러 건을 거론하며 “이 후보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이 후보자 아내의 아들 학교 이사 활동 문제, 학교 설립 이전부터 아들이 예비학생으로 활동했던 문제, 아들이 부정교합으로 신체검사를 연기한 뒤 척추관절병증으로 면제를 받았다는 본지 보도들을 소개한 뒤 “제목부터 조국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악의적인 보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무슨 원한 관계가 있느냐”며 언론 보도가 사적 원한 때문에 나온 것처럼 몰아 가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는 ‘학생 땐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전설이었지만 이후엔 널리 알려진 직장 경력 없이 30대 중반부터 정치인이 돼 10억원 이상 자산을 모으고 20년째 정치 거물이 된 그의 삶 자체에 논란이 집중되는 분위기다.’라는 문장을 발췌해 “이 후보자가 탐관오리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뉘앙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의 재산은 “4선 의원 18명 중 꼴찌에서 5번째”라면서 “이게 국민들 눈높이에 지탄의 대상이냐”라고 역설했다. 해당 기사는 언급된 문장 외에 이 후보자 재산 증식 과정에 대한 의혹을 다룬 내용은 없었다.
김 의원은 이어 ‘대를 이어 군대를 면제받고’라는 대목을 읽더니 “(이 후보자 아들과 관련해서) 마치 권력세습을 통해서 면제를 받았다는 듯한 뉘앙스”라고 풀이하며 흥분했다. 기사에는 ‘권력’ ‘세습’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김영호 의원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서대문·광주 지역구의 6선 정치인, 고(故) 김상현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의 아들이다. 그는 스포츠투데이에서 5년여간 기자 생활을 한 뒤 2004년 37세에 아버지의 옛 지역구인 ‘서대문 갑’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김 의원은 17·18·19대 총선에서 3번 내리 낙선한 끝에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대문 을’ 지역구로 처음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됐다. 국회 외통위 청문회에는 김상현 전 의원이 모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의원도 있었다.
이인영 아들, 설립 전부터 교육받았지만 “디자이너들은 잘 아는 학교”
김 의원은 이 후보자 아들이 졸업한 디자인 교육기관에 대해 ‘대다수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이 교육기관’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두고서는 “일반인은 당연히 모르지만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학교”라고 주장했다. 이어 청문위원들에게 “이 자리에 여러분들도 디자인 학교 잘 모르지 않느냐”며 “총 5년의 수업 과정을 통해 학위를 취득한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악의적인 보도”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자 아들은 디자이너들도 알기 어려웠던 기관 설립 1년 전부터 예비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2013년 기관 설립과 동시에 1기생으로 입학했다.
‘해당 교육기관에서 2015년 148만8,000원, 2016년 330만원의 소득도 거뒀다. 이 소득이 어떤 업무에 대한 대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학금 성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한 부분을 두고는 “이 후보자가 근거 자료를 다 제시했다”며 “2015년은 학교 내에서 ‘내 공간 멋지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노동의 대가’를 받은 것이고 2016년에는 공정무역포럼 전시제작,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 제작으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의 설명은 그간 언론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이날 김 의원이 이 후보자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이 후보자는 준비해 온 종이를 꺼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김 의원이 읊은 문장들은 각 보도의 핵심 내용들과도 대부분 무관했다. 그는 이 후보자 아내가 아들 학교의 이사가 아니라든가, 아들이 학교 설립 1년 전부터 예비교육을 받지 않았다든가, 아들이 척추관절병증으로 군 면제를 받기 전 부정교합으로 한 차례 신체검사를 연기하지 않았다든가, 아들이 독일에서 유학을 하지 않았다든가 하는 식으로 기사의 핵심 팩트를 반박하기보다 지엽적인 문장들을 주로 들고 왔다. 아래는 김 의원이 “근거 없는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라며 청문회장 화면에 띄운 본지 기사 목록.
▶[단독] 이인영 아들 '스위스 유학' 지원 기관에 엄마가 이사회 임원
▶[단독] 이인영 아들, '부정교합'으로 신검 연기 뒤 6달만에 '척추병'으로 軍면제
▶[단독] 이인영 아들, 유학 연계기관 설립 1년전 이미 '입학예정생'
▶[단독] 이인영 아들, 독일에서 추가 유학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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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