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겠다며 돈을 푼 결과 시중 통화량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었지만 정작 생산과 투자를 늘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저신용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서고 기간산업 협력업체의 자금 지원도 이번주 개시할 예정이지만 유동성 사각지대에 제대로 돈이 흐를지는 미지수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올해 기업의 유동성 부족 규모는 30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장기화하는 코로나19가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에는 54조4,000억원까지 부족 자금이 늘어난다.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유동성 악화와 채무상환 능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리스크관리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상장기업의 평균 예상부도 확률은 1.5% 안팎에 머물렀다 지난 3월 들어 2.5%로 상승해 투기등급 수준이 됐다. 신용등급 역시 대거 하향 조정돼 올 들어 5월까지 기업 신용등급 상하향배율은 0.2배로 지난해(0.6배)에 비해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기업 수가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넘치는 유동성에도 은행들의 기업대출 심사는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의 ‘금융기관 대출행태 조사’를 보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태도는 2·4분기 7에서 3·4분기 -10으로 떨어졌다. 마이너스(-)는 대출 태도가 강화될 것이라고 응답한 금융기관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많다는 의미다. 과잉 유동성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넘기면 경영 정상화를 이룰 기업들을 위해 24일부터 3조원 규모의 기업 유동성지원기구(SPV)를 가동해 저신용 회사채·CP를 매입하는 한편 기간산업 협력업체에 운영자금을 최대 5조5,000억원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 대책이 기업의 침체된 생산 활동을 깨우고 투자 증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저신용 회사채·CP 매입 기구만 해도 앞서 가동했던 채권시장안정펀드처럼 집행 실적이 저조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당초 20조원 지원을 목표로 조성된 채안펀드는 실제 1조1,000억원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경제상황이 개선돼 소비가 늘지 않는 이상 일시적인 회사채·CP 매입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경제상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SPV가 가동하더라도 기업을 일시적으로 연명시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다른 금융회사도 비우량채를 살 수 있도록 SPV가 분위기를 적극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