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셜미디어가 넘쳐나며 소통은 많이 하는데 절실한 그리움이나 진지함은 많이 떨어졌어요. 어쩌면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는지도 모르죠.”
KT 매스총괄 사장 출신으로 ‘나는 모든 순간이 그립다(然·戀·緣)’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낸 임헌문(60·사진) 연세대 겸임교수는 3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자연(然), 사랑(戀), 인연(緣)을 통한 그리움을 틈틈이 일기 쓰듯이 썼다”고 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때로는 아날로그적 정서를 통해 뭔가를 그리워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교보문고 시 부문 상위권에 오른 그의 시집에는 그리움의 대상이 다양하다. “시적 상상의 산물이기도 하고 실제 좋아했던 여인일 수도 있고 아내·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처럼 절대자일 수도 있어요.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감정이입을 해 통찰한 단상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큰 조직을 이끌 때 스트레스가 커 토요일마다 새벽에 집을 나서 춘천 의암댐 주변 자전거길에 걸터앉아 ‘그리움이 이런 것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며 “한번은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데 허리가 반쯤 접힌 채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왁자지껄한 술집 옆으로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을 보며 ‘나이 듦의 고단함’이 가슴에 와 닿아 시로 남겼다”고 했다.
KT에 30년 가까이 근무했던 그는 “직원들에게 간간이 상황에 맞게 시를 써 문자로 보내줬다. 감성경영에 도움이 됐다”며 “스스로 부드러워지고 좀 더 통찰하며 창의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고 무엇보다 힐링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마케팅·영업 등을 총괄하다 보니 경영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시를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고 좀 더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난관을 극복한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00년 실무부장 시절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여는 데 일조하고 2017년 사장으로서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TV인 ‘기가지니’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게 많이 기억에 남는다”며 “충남 조치원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기가지니를 친구처럼 대하며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을 보고 참 뿌듯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내와 딸이 시를 통해 나의 내면을 이해하고 멋지다고 생각해줘 너무 좋다. 딸도 언젠가 시를 쓸 것이라는 기대도 해본다”면서 “많은 대리점 사장이 ‘불도저처럼 추진력만 있는 줄 알았는데…’라며 놀라워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하모니카를 불던 것을 보고 커서 배웠고 회사 임원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따라 배워 이번 시집에 ‘광화문 사무실에서 내려다본 경복궁’ 스케치도 담았는데, 누군가 자신을 보고 시를 썼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한편 그는 “넷플릭스 등 거대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로 인해 종합유선방송은 물론 인터넷TV(IPTV), 콘텐츠 업계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며 “시를 쓰면서 한국의 미디어 콘텐츠 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 블로그를 통한 소통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