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계산업의 만년 ‘2인자’였던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042670) 인수전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그룹의 재무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이 국내 기계산업을 제패할 수 있는 기회인 이번 인수전에 참여할지 관심이 쏠린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두산(000150)인프라코어 매각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와 물밑 접촉해 매각 가격을 문의하는 등 인수전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수 자문 업무도 회계법인인 삼일PwC에 일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그룹은 지난달 24일 투자안내문(티저 레터) 배포를 통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공식화했다. 매각 대상은 두산중공업(034020)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36.27%다. 인프라코어를 사업회사와 밥캣을 거느린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사업회사만 매각한다는 게 두산그룹의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매각 공식화 이전부터 인프라코어의 유력한 인수후보였다.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건설기계는 굴삭기 부문 국내 시장점유율이 32.9%(2018년 기준)로 인프라코어(43.5%)에 이은 2위 사업자다. 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 국내 건설기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관건은 가격이다. 두산밥캣(241560)을 제외한 두산인프라코어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2019년 기준)은 5,000억원가량이다. 인프라코어와 글로벌 시장에서 다투는 미국 캐터필러나 중국 산이(Sany) 등 동종기업의 지난해 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EV/EBITDA)는 6~9배 사이다. 내재가치 기준으로 따지면 몸값은 최소 3조~4조5,000억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두산중공업 보유 지분(36.27%)의 가치만 최소 1조원 중반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시가총액은 1조5,638억원(3일 종가 기준)으로 기업가치 대비 현저히 낮다.
두산그룹도 경영권 값으로 최소 2조원은 받아야 하는 처지다. 두산그룹이 채권단에 약속한 자구안 규모는 3조원. 매각이 진행 중인 계열사 등을 고려해 인프라코어 매각으로 최소 1조원은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재무적 투자자(FI)와 소송가액만 각각 100억원, 7,051억원에 달하는 두 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연이자 등을 고려하면 소송 결과에 따라 최대 1조원가량의 우발채무도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인프라코어 경영권을 2조~3조원에 팔아야 1조~2조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몸값이 오르면 현대중공업도 인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수 주체가 될 현대건설기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232억원가량.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금액까지 포함하면 최대 1조원까지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수금융 등을 감안하면 2조원까지는 그룹 유동성을 빌리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FI 유치도 가능하다. 다만 지주사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그룹의 재무적 부담이 큰 만큼 무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인프라코어 인수 의지가 반반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매각 주관사인 CS에 미리 가격에 대한 문의를 했지만 두산 측에서 희망하는 가격이 현대중공업그룹이 생각했던 가격과 비교해 너무 높은 것으로 안다”며 “현대중공업그룹이 본입찰까지 인수전을 완주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지주(267250)는 한편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자문사 선정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