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유행이 뒤바뀌는 가요계에서 꿋꿋이 ‘복고’를 외친 박문치가 90년대 감성을 등에 업고 대세로 떠올랐다. 아이돌 음악과는 차별화된 독창적 음악세계에 세대를 불문하고 흠뻑 빠져들었다.
박문치의 음악은 발매일을 가리면 90년대 가요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1996년생, 태어나기도 전 음악들이 자신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그는 멜로디와 가사, 뮤직비디오, 앨범 재킷 등을 모두 90년대식으로 구현하며 기회를 노려왔다.
‘가요톱텐’이나 ‘TV가요20’ 등의 시대가 훌쩍 지나고 SNS가 인기를 좌우하는 시대가 왔지만, 시대를 역행하는 그의 음악세계는 10대와 20대에게도 환영받았다. 입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박문치가 대체 누구지?’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확산시켰다.
그가 대중에 자신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은 90년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 이효리 덕분이다. MBC ‘놀면 뭐하니?’에 이효리가 언급하면서 불쑥 등장한 이 ‘90년대 음악을 하는 90년대생 아티스트’는 방송에서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지코의 ‘아무노래’ 등을 90년대식 음악으로 재해석하며 화제로 떠올랐다. 이전까지 유명인사였다면 이제부터는 ‘레트로 1인자’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확실하게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싹쓰리의 ‘여름 안에서’ 리메이크 편곡을 맡아 당당히 음원차트 1위에 올렸다.
박문치는 보컬이기도 하지만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더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으로 발매되는 앨범은 ‘토이’의 음반처럼 그가 프로듀싱을 맡고 객원 보컬이 노래를 부른다. 때로는 레트로에 국한되지 않고 강다니엘의 ‘인터뷰(Interview)’, 엑소 수호의 ‘사랑, 하자’, 엑소 백현이 부른 보아의 ‘공중정원’ 리메이크 등 아이돌 그룹의 음악에 신선함을 불어넣기도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치스비치’라는 레트로를 겨냥한 걸그룹 멤버로도 참여해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치스비치는 치즈, 스텔라장, 러비와 박문치가 모여 만든 그룹으로 정통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다. 팬들은 이들을 ‘기억 조작 걸그룹’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저화질로 보면 90년대 뮤직비디오라고 착각할 만큼 시대를 잘 구현해냈다.
그가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레트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정통을 추구한 덕분이다. 90년대 가수가 90년대 노래에 유행을 입혀 부르는건 과거 회상에 그치지만, 트렌디한 음악을 접한 새로운 세대가 90년대 스타일을 해석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로 인해 박문치의 레트로 세계는 듣는 이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박문치는 3일 ‘놀면 뭐하니?’에서 선보였던 ‘쿨한 사이(Cool한 42)’ ‘MBTI’를 발표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차트인에도 성공했다. 앨범에 객원 보컬로 참여한 일로와이로 강원우, 기린, 준구 등의 가수들이 ‘박문치 유니버스’를 결성하면서 싹쓰리에 이어 90년대 분위기의 유행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살면서 박문치로 차트인하는 것을 보다니. 기절하기 직전”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기절하기 직전’의 꿈 같은 일은 꿈만 꿔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탄탄한 실력과 아이디어로 유행에 발맞춰 자신을 빛낸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