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고 또 쫓는다. 피가 땀처럼 흘러내려도 오로지 추격 대상에만 집중한다. 그럼에도 목표물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놓칠 때마다 분노가 치솟고, 분노는 이내 더 큰 살의로 바뀐다. 그런데 추격의 이유가 뭐였더라. 잘 모르겠다. 이미 시작한 게임, 이제는 끝을 보는 게 중요할 뿐이다.
5일 개봉하는 액션 누아르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자이니치 킬러’ 레이의 캐릭터다. 언뜻 보면 쉬울 것 같으나 막상 연기로 풀어내기엔 어려운 인물이다. 잔혹한 킬러라도 ‘소쩍새 우는 사연’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지만 레이는 무자비하고 맹목적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인간 백정이다. 이렇게 되면 캐릭터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배우의 몫이 된다. 배우 입장에선 큰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도전에 선뜻 나선 배우 이정재를 개봉 직전 만나 출연 소감을 들었다.
이정재는 “처음 받은 대본에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었다”며 “이런 경우 폭넓게,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집중력을 발휘하거나 연기의 방향을 택하는데 있어서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형을 죽였다는 이유로 레이가 추격하는 인남(황정민) 역시 킬러다. 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청부 살인으로 먹고사는 전직 국정원 요원이다. 관객들이 마음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레이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고민 끝에 이정재는 레이를 ‘이해 안 되는 이상한 킬러’로 설정했다. 그는 “레이가 인남을 쫓는 이유가 복수라고 하는 건 핑계”라며 “사냥 거리를 찾던 와중에 사냥감이 걸려 흥분했고, 그래서 사냥에 나선 ‘성격이 이상한 놈’으로 코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또 이상한 킬러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캐릭터 연구를 했다고 했다. 외모와 몸짓, 눈빛까지 세심하게 고민해 캐릭터의 특징을 미리 설정했다. 문신이나 의상도 캐릭터의 한 부분으로 공을 들였다. 이정재는 “레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며 “이 느낌을 잘 잡아서 구체적으로 키워 나가면 전작의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릭터 통한 상상력 구현이 배우의 일" |
한편 이번 영화는 한국과 일본, 태국 등 3개국에서 진행됐다. 해외 촬영 분량이 많아 힘들었지만 그만큼 좋은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그는 “촬영이 진행될수록 점점 액션 영화로 변해갔다”며 “당초 시나리오에는 이렇게까지 액션 장면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태국에서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홍원찬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총싸움, 칼싸움에 폭탄까지 갈수록 강력한 액션을 추가했다”며 “다행히 모든 스태프가 발 빠르게 효과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결론적으로 자동차를 두 대나 뒤집어 터뜨렸다”고 웃었다.
함께 출연한 배우 황정민과 박정민에 대해서는 강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이정재는 “황정민은 매 장면에서 드러내야 할 감정을 항상 최대치로 표현해내는 대단한 배우”라며 “현장에서 끊임없이 더 좋은 게 없을지 고민하고, 큰 틀에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박정민에 대해서는 “절대 과하지 않게 캐릭터의 핵심만 잡고 간다. 특별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