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계룡산]하늘 품은 사찰, 번뇌도 품어주려나

東 동학사·西 갑사·南 신원사·北 구룡사

동서남북 천년고찰이 지켜온 '천하 명당'

사찰따라 이어진 등산로 한바퀴 돌다보면

폭포가 만든 운무·우거진 참나무서 힐링

코로나 시대, 집콕족 언택트 휴가지 제격

계룡산은 그 신성한 기운 때문인지 풍수지리학자들이 예로부터 천하 길지(吉地)로 불렀다. 조선 시대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은 계룡산 일대를 전란에도 안심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꼽았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계룡산 남쪽을 도읍지로 정하고 1년간 궁궐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육해공군 본부인 계룡대가 들어섰지만 당시 궁궐을 짓기 위해 가져다 놓은 주춧돌 100여개가 여전히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계룡산은 ‘명산’이라기보다는 ‘명당’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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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향으로 계룡산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불교를 중심으로 각종 종교단체가 몰려들었다. 일부 종교인들은 이곳을 성지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때 200개가 넘던 유사종교 단체들은 1976년 종교정화운동으로 강제이주 됐고, 이제 계룡산을 지키고 있는 것은 불교 사찰뿐이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심신이 지쳤을 때 일상을 피해 넉넉한 자연의 품에 기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계룡산 대표 사찰을 따라 산을 한 바퀴 둘러봤다.

동학사는 주변 암자와 사당과 함께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동학사는 주변 암자와 사당과 함께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계룡산을 동서남북으로 나눠 동쪽에는 동학사, 서쪽에는 갑사, 남쪽에는 신원사가 있다. 북쪽의 구룡사는 현재 절터만 남아 있다. 역사로 따지면 신원사가 가장 오래된 사찰이지만 접근성으로는 동학사가 으뜸이다. 동학사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에 자리해 있지만 대전과 계룡·논산에서도 버스를 통해 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곳도 동학사다. 동학사는 고려 시대인 920년(태조 3) 도선국사가 지금의 자리에 있던 기존 사찰을 중창했다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제를 지내면서 규모를 키웠다. 동학(東鶴)이라는 이름도 이때 지어졌다. 절 동쪽의 학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 1728년 신천영의 난으로 불에 탄 것을 1814년(순조 14) 중창했다. 지금의 동학사는 전국 최초의 비구니승가대학으로 유명해졌다.

동학사 경내에 자리한 숙모전(肅慕殿)은 단종과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묘재실이다.동학사 경내에 자리한 숙모전(肅慕殿)은 단종과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묘재실이다.


매표소를 지나 동학사로 가는 길에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사찰의 경계를 알리는 일주문이 아니라 홍살문이다. 궁전이나 능·묘·원 입구에나 세워지던 홍살문이 사찰 입구에 들어선 이유는 동학사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 동학사 내에는 동계사(東鷄祠), 삼은각(三隱閣), 숙모전(肅慕殿) 같은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동계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던 곳이고, 삼은각은 고려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 야은(冶隱) 길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또 숙모전은 단종과 사육신, 김시습 등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동학사가 사찰이기 이전에 제를 지내던 사당으로의 역할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주변 사당부터 여러 암자까지 주변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 덕분에 동학사가 천년고찰로 그 자리를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동학사 가는 바로 옆으로는 동학계곡이 흐르는데 계룡 8경 중 5경에 꼽힐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동학사 바로 앞 세진정(洗塵亭)은 번뇌를 씻어내는 정자라는 뜻으로 이 정자에 올라서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동학사 가는 바로 옆으로는 동학계곡이 흐르는데 계룡 8경 중 5경에 꼽힐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동학사 바로 앞 세진정(洗塵亭)은 번뇌를 씻어내는 정자라는 뜻으로 이 정자에 올라서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계룡산에 대해 ‘웅장함이나 수려함에서 다른 산에 조금 못할지 모르나 그 깊숙한 골짜기와 넓고 깊은 못은 다른 산에 없는 것들’이라고 쓰고 있다. 이처럼 계룡산은 예로부터 계곡으로도 이름나 있다. 총 3.6㎞ 길이의 동학계곡은 동학사 등산로를 따라 흐르고 있어 등산객들에게 걷는 내내 시원한 물소리를 들려준다. 동학계곡의 정점인 은선폭포는 계룡산에서 가장 큰 폭포로 동학계곡과 함께 각각 계룡 8경 중 7경과 5경으로 꼽힌다. 비가 자주 내리는 요즘 찾아가면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운무가 피어난다는 은선폭포의 비경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룡산 갑사는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싼 일반 사찰과는 다른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다.계룡산 갑사는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싼 일반 사찰과는 다른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다.


계룡산 서쪽 갑사(甲寺)는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사찰이다. 보통 ‘절 사(寺)’ 앞에 사찰 이름으로 두 글자를 쓰는 일반 사찰과 달리 한 글자를 쓰는데다 사찰 이름에 ‘으뜸 갑(甲)’자를 쓴 것도 어색하다. 이 때문인지 계룡사나 계룡갑사, 갑사사(甲士寺)라고도 불린다. 갑사는 이름만큼이나 가람 배치도 독특하다. 절 앞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부터 강당인 지장전, 선방인 적묵당, 강학당인 진해당까지 건물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ㅁ’자 구조다. 사방이 탁 트인 사찰과는 다른 구조로 갑갑함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막상 경내로 들어서면 아늑함이 느껴진다.

사찰보다 더 유명한 갑사계곡은 경치 좋은 곳을 골라 갑사구곡이라 이름 붙였다. 사진은 갑사구곡 중 6곡인 명월담(明月潭)이다.사찰보다 더 유명한 갑사계곡은 경치 좋은 곳을 골라 갑사구곡이라 이름 붙였다. 사진은 갑사구곡 중 6곡인 명월담(明月潭)이다.


갑사는 사찰보다 오히려 계곡이 더 유명하다. 갑사계곡은 계룡산 7개 계곡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해 갑사구곡(甲寺九曲)으로 불린다. 갑사구곡의 중심에는 친일파 윤덕영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갑사계곡 중 경치 좋은 9곳을 골라 용유소·이일천·백룡강·달문담·군자대·명월담·계룡오암·용문폭포·수정봉이라 이름 짓고 계곡이 흐르는 곳에 ‘간성장’이라는 별장을 세웠다. 그가 노년에 머물던 간성장은 현재 갑사 부속 건물로 갑사구곡 중 6곡인 명월담(明月潭) 아래 자리하고 있다. 갑사는 일주문부터 1㎞ 남짓을 걸어야 도착하는데, 이 길을 ‘5리 숲길’이라 부른다. 계룡 8경 중 6경으로 꼽히는 이 길은 가을을 최고로 꼽지만 참나무와 느티나무·산벚나무가 우거진 여름철에도 걷기 좋다.

갑사 경내에 위치한 간성장은 친일파 윤덕영이 노년에 머물던 별장이다. 그는 갑사계곡 중 경치가 좋은 9곳을 골라 갑사구곡이라 이름 지었다.갑사 경내에 위치한 간성장은 친일파 윤덕영이 노년에 머물던 별장이다. 그는 갑사계곡 중 경치가 좋은 9곳을 골라 갑사구곡이라 이름 지었다.


계룡산 남쪽을 대표하는 천년고찰 신원사는 사찰보다 불과 140여년 전 지어진 산신각 중악단(中嶽壇)이 더 유명한 곳이다. 중악단은 조선 시대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으로 묘향산(상악단)과 지리산(하악단)까지 세 곳에 세워졌지만 현재 중악단만 남아 있다. 중악단은 계룡산 남쪽을 수도로 삼으려고 한 태조 이성계의 계룡산 도참설과도 연관이 깊다. 명성황후는 1879년(고종 16) 조선의 국운이 쇠하자 계룡산에서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라를 일으킨다는 계룡산 도참설을 잠재우려 1651년(효종 2년) 철폐됐던 중악단을 재건했다고 한다. 신원사(新元寺)의 옛 이름이 신원사(神院寺)였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악단은 조선 시대 계룡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산신각 중 하나다. 태조 이성계 때 세워졌다가 철폐됐고, 명성황후가 다시 재건했다.중악단은 조선 시대 계룡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산신각 중 하나다. 태조 이성계 때 세워졌다가 철폐됐고, 명성황후가 다시 재건했다.


중악단은 왕실의 손길이 닿은 만큼 조선 궁궐의 건축기법이 녹아들어 있다. 높은 돌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조선 후기의 다포(多包) 양식을 띠고 있고,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했다. 내부에는 중앙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해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뒀다. 중악단은 신원사 경내지만 담장을 설치해 사찰과 분명히 경계를 두고 있는 건축물이다. 중악단에서는 지금도 매년 4월과 10월 산신제와 고종과 명성황후의 추모제가 열린다.

신원사 중악단에는 조선 궁궐의 건축기법이 녹아들어 있다.신원사 중악단에는 조선 궁궐의 건축기법이 녹아들어 있다.


계룡산 사찰 3곳은 모두 등산로로 연결돼 있다. 가장 먼 동학사부터 갑사까지는 총 3시간 거리이며, 가장 가까운 갑사에서 신원사까지는 2시간30분 거리다. 여러 코스 가운데 어디로 가더라도 연천봉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난도가 높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등산을 목적으로 계룡산을 찾는 게 아니라면 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권한다. 차로 사찰 간을 이동하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글·사진(공주)=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신원사는 계룡산 다른 사찰에 비해 방문객이 적어 한적하게 둘러보기 좋다.신원사는 계룡산 다른 사찰에 비해 방문객이 적어 한적하게 둘러보기 좋다.


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신원사 앞으로는 계곡이 흐른다.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신원사 앞으로는 계곡이 흐른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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