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예매한 관객들은 객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까지 이 대사가 머리에 맴돌지 모르겠다. 함께 극장을 찾은 이에게 한번쯤 해보겠지. 추억의 그 대사 “야 브라더….”
화면이 밝아지면 귓가에 맴돌던 ‘브라더’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오냐 안나오냐 말도 많았던 ‘신세계2’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톡 쏘는 콜라처럼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야기와 캐릭터는 완전히 다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납치된 아이를 구하는 남자와 그를 죽이려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아주 간결한 서사로 진행된다. 복잡하게 얽힌 ‘신세계’가 치밀하면서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권력쟁탈전을 다룬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 이야기의 구성도, 분위기도 전작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지워버린다.
작품은 살떨리는 긴장감을 서로 상반되게 표현한다. ‘신세계’는 한 조직에 속한 두 패의 세력다툼, 어제의 동지를 배신하지 않으면 내가 당하게 되는 비정함 속 심리적 긴장을 극대화한다. 정청(황정민)이 조직에 숨어둔 첩자들을 이자성(이정재)에게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심장 쫄아드는 순간, 피습당한 정청이 이자성을 향해 “너 내가 살아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는 장면에서의 안도, 영화는 심리적으로 관객을 조였다 풀었다를 자유자재로 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긴장은 폭력에서 나온다. 극 초반부터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들이 등장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찌르고 베고 부수고 쏘고 조른다. 태국에서의 납치사건을 쫓는 인남(황정민)의 뒤를 닿을 듯 말 듯 바짝 쫓아오는 레이(이정재), 그리고 이들이 ‘딱’ 마주치면 관객들은 ‘헉’ 한다. 칼과 칼이 부딪혀 불꽃을 내는 순간, 그 찰나에 쭈뼛 서는 긴장감은 ‘신세계’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그래 이맛이야’의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황정민과 이정재가 마주치는 ‘눈빛’도 8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신세계’에서의 눈빛은 애정과 애증 사이에 물려 있었다. 반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눈빛은 서로 ‘죽여야 한다’는 맹목적인 감정에서 시작된다. 극 후반부 레이가 “(인남을)쫓는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는다”며 조여오는 것과 달리, 삶을 정리하려는 듯 했던 인남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찾은 뒤 확연히 달라졌다. 죽이려는 자와 살아야 하는 자가 맞선 최후의 순간, 이들의 마주선 눈빛은 ‘신세계’ 못지않게 관객을 압도한다.
두 작품의 백미는 단연 액션이다. ‘신세계’에서 주먹 한번 휘두르지 않았던 이자성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칼과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드루와”를 외치던 정청의 잔인함은 외형적으로 확장됐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칼과 주먹을 사용한 액션은 맞는 순간 잠시 멈췄다가 풀어지는 방식으로 박진감을 높인다. 도망치는 인남과, 완전무장하고 그를 뒤쫓는 레이, 이들을 추격하는 방콕 경찰이 물리는 후반부에서는 총과 수류탄을 앞세워 원 없이 터트리고 부수고 박살내는 거대한 규모의 장면은 시원시원하다.
‘신세계’의 마지막처럼 따스한 빛과 사나이들의 우정은 없다. 춤추는 칼과 낭자한 피, 연발로 쏟아지는 총탄세례와 빵빵 터지는 수류탄까지…. 브로맨스를 쏙 뺀 ‘신세계’ 속 황정민과 이정재의 팽팽한 대립을 ‘액션’버전으로 보고 싶다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아주 만족스런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