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의 가치 하락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가신용도와 관계가 없어 ‘무국적 통화’라고 불리는 금·은·비트코인 등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중국 갈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코로나19로 유럽·일본 등 각국의 경제회복이 불확실해지면서 투자자들이 ‘국가 딱지’가 아예 없는 투자처를 찾는 것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현물가격은 장중 온스당 2,075.47달러까지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보다 36.8% 급등한 것이다. 9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도 2,089.20달러까지 올랐다. 은 선물가격도 온스당 29.92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말에 비해 67% 상승했다.
특정국가에서 발행하지 않아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9일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1만달러를 돌파한 비트코인 가격은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며 이날 1만1,735.90달러로 1만2,000달러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처럼 무국적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미국 달러화 약세와 맞물린 코로나19 확산 장기화에 대한 투자자와 금융 시장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경쟁 통화인 유로화와 엔화·파운드화 등이 강세를 보이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유럽·일본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경기상황이 나빠졌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국적 통화의 매수를 머뭇거리고 있다. 특히 통화가치 상승은 이들 국가에 오히려 부정적인 뉴스일 수 있다는 시장의 인식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일본에서 통화가치가 오르면 수출경쟁력이 하락해 이미 타격을 입은 경제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가 딱지’가 없는 무국적 통화는 이런 위험성에서 벗어나 있다. 국가 통화의 매입이 주저되는 상황에서 무국적 통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금융 시장에서는 부쩍 힘을 얻고 있다. 금·은은 전통적으로 달러 헤지 수단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마이클 쿠기노 퍼머넌트포트폴리오 최고경영자(CEO)는 “조만간 금값이 4,000달러를 넘어선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국적 통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강세도 뚜렷해지고 있다. 금·은 등에서 벗어난 새로운 투자처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니콜라오스 파니기르초글루 JP모건 투자전략가는 “주식 외 대체투자 대상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금을, 젊은 층은 비트코인에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리 코로나19 사태에서 먼저 벗어난 중국은 달러화 약세 기조 속에서 막강한 구매력을 배경으로 위안화 세계화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다만 중국의 폐쇄적인 금융환경이 여전해 대체 기축통화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아직은 많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따르면 6월 국제 지급거래에서 위안화 비중은 1.76%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12월(1.94%)보다 오히려 0.18%포인트가 하락한 것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