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미국 백악관에 연방기관 감시기구인 특별조사국(OSC) 명의의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을 해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콘웨이 고문이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한 ‘해치법(Hatch Act)’을 수차례 위반했다는 게 해임 사유였다. 그가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비난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OSC 국장이 백악관을 상대로 반기를 든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1939년 제정된 제1차 해치법은 연방정부의 공무원에 대해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38년 의회 선거에서 일부 민주당 후보들이 공무원 취업을 내세워 지지 선언을 유도한 사건이 큰 파문을 빚은 게 계기가 됐다. 이어 1940년에는 연방정부 예산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각 주 및 지방공무원의 정치활동까지 제한하는 제2차 해치법이 만들어졌다. 선거 과정에서 특정인을 지지·비방하거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치’는 법안을 추진한 칼 해치 뉴멕시코주 상원의원의 이름에서 따왔다. 다만 대통령과 부통령은 해치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해치법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됐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측은 e메일 스캔들을 터뜨린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정파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정치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해치법이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93년에는 법 개정을 통해 연방공무원도 사적인 영역에서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해치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연방 예산으로 운영되는 백악관의 직원을 대선 관련 이벤트에 동원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규율을 까다롭게 따지는 미국을 보면서 우리 공직자들은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헌법 정신(제7조 2항)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