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해 지리산 자락 남원에서 양봉을 하는 최순호(53)씨는 지난 10일 새벽 벌통을 살피러 산 위 양봉장에 올라가다가 깜짝 놀랐다. 산길이 유실되고 길가의 사과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산사태가 나 산이 절개되고 토사가 엄청나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산에 오르니 밀려온 토사가 벌통을 덮쳤다. 다행히 주변 농가에 비해 큰 피해는 없었으나 귀농한 지 5년여 만에 이렇게 큰 자연재해는 처음”이라며 “올해는 아카시아 채밀기에 냉해를 입어 꿀을 전혀 따지 못했고 장맛비로 인해 꿀벌관리도 엉망이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구촌이 지구온난화(기후변화)로 대변되는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과 중국 남부지역은 집중호우로 수마가 할퀴고 있다. 미국 동북부는 허리케인이 강타하고 프랑스 등 유럽은 폭염으로 가쁜 숨을 몰아쉰다. 미세먼지를 내뿜는 산불도 갈수록 늘어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과 아프리카에서 산불이 휩쓸고 있다. 호주는 기후변화로 건조화가 심해져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산불이 지속됐다. 심지어 동토층이 많은 러시아 시베리아조차 이상기온으로 산불이 빈번하다.
우리나라에서 아열대성 기후의 특징인 국지 집중호우와 긴 장마가 나타나는 것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다.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현지에 갇혀 있어야 할 찬 공기가 내려와 한반도 장마전선의 북상을 막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2018년 여름 최악의 폭염, 2019년 겨울 이상고온 현상을 보였다.
북극 바다의 얼음덩어리(해빙)도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북극 해빙은 겨울에는 늘고 여름에는 줄어들지만 역대 북극 얼음이 가장 많이 녹았던 2012년 7월보다도 더 많이 감소했다. 기후변화로 오는 2050년 이전에 북극에서 여름 해빙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최근 온난화가 심해지는 시베리아와 가까워 기후 변화가 가속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온실가스인 메탄·이산화탄소 등이 새어 나오고 옛 세균도 부활한다. 유럽우주국(ESA)의 인공위성은 2018년 야말반도에서 영구동토층이 녹아 생긴 넓은 호수를 관측했다. 2016년에는 야말반도에서 탄저균으로 2,300여마리의 순록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환경부와 기상청은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통해 지구 평균 지표온도가 1880~2012년 132년 사이에 0.85도 상승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1912~2017년 105년 새 약 1.8도나 급등했다고 밝혔다.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21세기 말 최악의 경우 4.7도나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현재 속도라면 2080년대에 벼 생산성은 25% 이상, 소나무숲은 15%가량 각각 감소하고 폭염과 각종 감염병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최근 ‘오늘부터의 세계’라는 책에서 “코로나19의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와 산림파괴이다. 제2, 제3의 코로나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사스·메르스·에볼라·지카바이러스의 출현도 생태계 교란과 관련이 깊다.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는 2018년 10월 ‘지구온난화 1.5℃’라는 보고서에서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40년께 1.5도, 2060년께 2도를 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할 경우 초고온, 집중호우, 극심한 가뭄 등의 발생이 증가하고 온난화 속도와 규모에 따라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IPCC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만들어야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온실가스가 흡수한 열의 대부분이 해양에 흡수되기 때문에 기후위기는 수십년 지연돼 나타난다”며 “우리는 이미 1.5도를 넘을 수 있는 온실가스를 거의 다 배출했는데 앞으로 회복력과 탄성력을 잃어버려 지구 조절 시스템이 붕괴되면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고 해변이 잠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세 플라스틱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하는 것도 기후위기를 부채질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기가 맑아지기는 했으나 폐비닐 등 플라스틱이 많이 나와 소각 과정에서 미세먼지가 많이 배출된다.
그럼에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등 지구촌의 기후위기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해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당신들이 우리 모두를 실패로 몰아넣고 있다”며 일갈했던 게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그린뉴딜’을 표방하고 있으나 높은 화력발전소 비중 등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세계 7위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을 ‘기후악당’ 국가 중 하나로 분류하기도 한다. 유영숙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은 “기후변화 위기는 기상이변뿐 아니라 경제·식량 안보·에너지 위기 등 전방위적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정부·기업·국민의 대응 자세나 행동 속도가 너무 느려 두렵다”고 말했다. 지구사에서 과거 다섯 번의 생물 대멸종(공룡이 마지막)은 빙하기나 소행성 충돌 등 자연 현상에 의한 것이지만 여섯 번째 대멸종(현재 약 870만종)은 인간이 만든 온실가스와 화학물질 등에 의해 나타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과연 기우일까.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