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면서 정신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근무환경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다수 정신보건 종사자들이 열악한 업무환경에 놓여 있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상황이 특히 심각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직원 A씨는 “큰일이 있을 때만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이 잠깐 주목받을 뿐 막상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변화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지친다”고 하소연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비롯한 지역시민 전반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일종의 ‘정신건강보건소’다. 현재 전국에는 총 255곳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직원들은 전화 및 방문상담 등을 통해 센터에 등록된 정신질환자들의 회복을 돕는다. 각종 재난 트라우마에 놓인 시민과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돌보고 정신질환 인식개선 캠페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문제는 이처럼 시민들의 근거리에서 수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근무환경이 현저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2월 기준으로 정신건강전문요원 1명이 관리하는 등록자 수는 50명에 달한다. 이마저도 2017년에는 1명당 60명 내외이던 것이 정부가 지난해 인력확충 계획을 내놓으며 그나마 나아진 수치다.
업무량과 난도에 비해 적은 보상은 종사자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장기간 근무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규정상 이들은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에 준하는 임금을 받도록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지자체의 예산에 따라 자신의 경력보다 낮은 호봉을 받거나 올해가 아닌 전년도나 전전년도 기준의 인건비를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며 “일은 힘든데 처우가 나쁘다 보니 이제는 인력 충원도 잘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과중한 업무량과 위험한 업무환경, 적은 임금이라는 삼중고에 지역 정신건강서비스를 책임지는 전문인력들은 3년이면 현장을 떠나는 실정이다. 실제로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019년 기준으로 3.1년밖에 되지 않는다.
A씨는 “상담 중 직원에게 욕을 하거나 신체접촉을 하려는 분들도 있고 응급상황에서는 환자분들이 달려드는 경우도 생긴다”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직원들도 사람인지라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정신건강 분야에도 국가 경제 규모에 걸맞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상민 건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생긴 후로 센터가 맡아야 하는 업무가 점점 늘고 있다”며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정신건강과 관련한 예산은 턱없이 적다”고 꼬집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부실화가 고스란히 사회의 손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정신보건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지난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했다. 고소득 국가 평균인 5.1%는 물론 국제보건기구(WHO)에 등록된 68개국 평균(2.82%)보다도 낮다.
전준희 협회장은 “지금처럼 전문인력들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기피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라며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도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