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과 동북아역사재단, 국립기록원이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아동과 여성 강제동원 기록이 담긴 자료를 공개했다. 3개 기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소장자료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들은 아동과 여성들의 강제동원 실태를 실증하는 학적부와 명부, 전쟁 동원을 정당화하고 선동하기 위한 신문기사와 문헌 등이다. 대표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은 ‘소년공(少年工)’ ‘산업전사(産業戰士)’라는 이름의 아동의 노무 동원 관련한 문헌과 신문자료를 내놨다. 신문에는 일제가 중학생들을 광산과 공장 등에 동원한 실태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후방의 산업 노동자들도 전선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보국(報國)한다’는 논리로 산업보국운동을 시행했는데, 조선의 아이들까지 ‘산업전사’라고 부르면서 동원한 것으로 기록됐다.
여성 동원을 보여주는 기록으로는 간호부 동원에 관한 신문자료가 있다. 일제는 여성 간호부들을 ‘백의의 천사’로 선전하면서 여성들을 침략전쟁의 최일선으로 내몰았다. 이를 위해 경성과 청진의 병원에 간호부 양성반을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일제는 간호부로 동원한 여성들에게 일본군 가미카제와 같은 자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방공 동원과 관련한 신문자료도 전시됐다.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방공훈련에 동원하고 있는 상황을 비롯해 ‘학교방공’이라는 명목 아래 ‘학생은 전부 방공부대’라고 선동하는 신문자료들을 볼 수 있다. 또 국민학생(초등학생)용 교과서에 방공훈련 관련 내용이 삽입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방공 동원과 관련한 문헌으로 ‘조선방공전람회기록’과 ‘언문 방공 독본’ 등 2종이 전시됐다.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은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이관된 도서와 신문, 잡지 등 30만여점 가운데, 아동과 여성, 방공동원과 관련된 자료를 엄선했다”며 “그동안 강제동원 문제는 군인, 군속, 노무자, 위안부에 집중됐지만 이번 공개를 계기로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제의 반인권적, 불법적 동원에 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활발한 논의가 촉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 소장기록으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국내 노역현장에 강제동원한 ‘학도동원(學徒動員)’ 내용이 담긴 학적부, 여성동원을 보여주는 간호부(看護婦) 관련 명부인 ‘유수명부’와 ‘공탁서’ ‘병적전시여부’ 등이 공개됐다. 그간 학생과 간호부 동원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실제 인물과 동원내용이 기재된 명부가 공개된 것은 보기 드문 사례다.
기록물에 따르면 일제는 1938년부터 학교별로 ‘근로보국대’를 결성해 학생들의 근로봉사를 강제했으며, 당초 10일 정도 동원을 계획했으나 전쟁이 심화하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기간을 1년까지 늘려 학생들을 노동력으로 적극 활용했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 ‘학적부(중학생)’에는 근로보국대 동원내용이 수록됐는데, 이 학생이 졸업 후에 일선 파견부대 군인·군속 명부인 ‘유수명부(留守名簿)’와 ‘공탁서(供託書)’ 등에서도 확인됐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학생들을 노동력과 병력의 원천으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은 “정부 각 기관은 소장기록의 공개 확대와 함께 사용자의 활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강제동원 관련 다양한 연구용역을 통해 산학협력 강화 및 연구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4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1층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국립중앙도서관 직원 중 한 명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18일까지 임시 휴관에 들어가면서 추후 공개 시기와 장소 등이 재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