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청년 예술가 임동식은 충남 공주의 금강 물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먼저 상류에서 떠내려온 폐목을 일으켜 세우고, 이어 강변의 돌멩이들을 주워 곧추세워진 폐목 위에 조심히 올렸다. 한때 당당한 자연의 일부였다가 인간에게 버림받은 신세가 된 폐목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했고,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강변 돌멩이에게는 “올라가”라고 말을 건넸다. 이는 임동식이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 회원으로서 선보인 야외 퍼포먼스로, 그만의 독특한 미학적 행로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미술계의 주류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데 집중해온 임동식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마련됐다. 전시회 제목인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은 30년 전 금강에서 자연과 호흡했던 퍼포먼스에서 따왔다. 전시는 작가의 퍼포먼스와 아카이빙, 회화, 드로잉 등 300여 점의 작품을 시대적 흐름과 특징에 따라 ‘몸짓’ ‘몰입’ ‘마을’‘시상’ 등 4개 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1945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임동식은 홍익대 회화과와 함부르크 조형예술대 자유미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청년작가회와 야투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퍼포먼스가 국내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간 그의 작업은 단순히 퍼포먼스에서 그치지 않았다. ‘밖’이라 할 수 있는 자연에서 퍼포먼스를 행한 후, ‘안’이라는 작업 공간에서 사진과 그림으로 기록해 남기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재창조, 편집된 기록물은 다음 퍼포먼스의 근간이 됐다. 안과 밖에서의 창작 활동이 무한히 순환되는 방식이다. 그렇게 안과 밖을 오가며 자연과 호흡하고, 기록하는 임동식의 창작 활동은 독일 유학 시절에도 계속됐다.
1993년 귀국한 임동식은 자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공주 원골에 손수 살 집을 짓고, 수선화를 비롯한 꽃을 심고, 어미 잃은 산토끼와 강아지를 키웠다.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삶은 그의 몸짓과 붓질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눈에서 본 순수함과 자연의 숨결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벗이 권하는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며 새로운 행복을 느꼈다. ‘친구가 권유한…’으로 시작되는 작품들은 바로 타인과의 행복한 교류가 낳은 결과물이다.
청년 시절부터 중시했던 ‘틈’을 통한 사유는 퍼포먼스, 아카이빙에 이어 회화에서도 계속됐다. 퍼포먼스에서 풀 사이의 틈을 중시했던 것처럼, 회화에서는 꽃과 나무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비를 촘촘하게 그림으로써 관객에게 사유의 기회를 주려 했다.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본인의 아카이브 1,500여 건(5,000여 점)을 서울시에 기증한 임동식은 미술관 측과 전시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수십 년 전 구상했던 작품 계획들이 현재로 소환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확실히 뭔가가 있다”며 “당시 여건이 되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 계획들에 집중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전시회는 오는 11월 22일까지 열리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이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해 지난 19일부터 잠정 휴관 중이다. 미술관 측은 휴관 기간에는 SNS 채널을 통한 온라인 전시 관람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어떤 개념적 틀로도 쉽게 포획되지 않는 작가의 일생에 걸친 미학적 궤적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거장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