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전문가인 이연복 셰프가 TV에 나와 소중하게 보관해온 식칼을 선뵌 적이 있다. 아마추어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던 이 식칼은 타이완 진먼섬(金門島)에서 생산됐다. 식칼이 진먼섬의 특산품이 된 데는 같은 나라 사람끼리 총부리를 겨눈 아픈 사연이 있다. 진먼섬은 타이완에서 190㎞ 떨어진 반면 중국 본토에서는 불과 2㎞ 거리에 있어서 지도로만 보면 중국 섬인 줄 안다.
장제스는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에 밀려 타이완으로 쫓겨나던 1949년 진먼섬을 최후의 보루로 여겼다. 그는 국민당 군대에 사수를 지시했고 군인들은 한 명의 인민군도 상륙하지 못하게 했다. 1958년 8월 인민군은 진먼섬의 해방을 외치며 포격한다. 타이완군도 포격으로 되받아쳐 포격전은 한 달 넘게 지속했다. 이는 1979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할 때까지 21년간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포격전은 진먼섬에 엄청난 양의 포탄 파편을 남겼고 파편은 포격전이 끝나자 어느덧 식칼 재료로 바뀌었다. 포탄을 만드는 철은 최상품이어서 식칼 역시 최상품이 됐다. 타이완 특산품으로 유명한 금문고량주도 포격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진먼섬을 지키던 장제스 휘하의 후롄 장군은 진먼섬이 수수를 재배하는 데 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수수를 원료로 금문고량주를 빚었다. 포격전이 한창일 때 군인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자 빨리 취하도록 하기 위해 금문고량주를 60도가 넘는 고도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진먼섬에서 최근 열린 포격 62주기 순직장병 추모 행사에 사상 처음으로 미국 측 인사가 참석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도 함께한 이 행사에는 타이완 주재 미국 대사 격인 타이완미국협회장이 자리했다. 공개를 꺼리던 과거와 달리 마치 보란 듯이 미국 인사의 참석 소식까지 알린 것은 미국과 타이완의 우호 관계를 과시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요즘 타이완해협에서는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고 중국군은 해상 실사격 훈련을 하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총 대신 진먼섬 식칼로 만든 좋은 안주와 잘 빚은 금문고량주로 군인들을 호궤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