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일반

직장인 홀리는 황금입지, 당산동이 들썩이고 있다 [영상]

역지사지 EP.8 당산동편

신령에게 제사지내던 곳에서 신흥 주거지로 우뚝 선 당산동

신·구축 가리지 않고 가격 고공행진 중

부족한 학군과 기반시설 개선 여지 없음은 약점





버스, 지하철, 올림픽대로의 자동차 등 여러 교통수단들이 한 데 모여 허브를 이루고 있는 이곳!

‘역사와 부동산의 만남’ 역지사지 여덟 번째 지역은 서울 서남권 교통 중심지이자 신흥 주거지로 주목 받고 있는 영등포구 당산동입니다.

■굿을 하던 동네에서 공업·군사지역으로

당산동은 한강과 맞닿아 있는 당산 2동과 영등포구청, 영등포경찰서 등 관공서를 품고 있는 당산 1동으로 이뤄진 지역입니다.



당산역(지하철 2·9호선)과 영등포구청역(지하철 2·5호선)을 끼고 있는 당산동은 서울에서도 인구 유입이 활발한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당산동은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동제당(洞祭堂)’에서 당제를 지내는 ‘당산(堂山)’골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당제를 지냈던 당집은 현재 당산역 동쪽 삼성래미안 1차 아파트 근처에 있습니다. ‘당산동 부군당’이라고 알려진 당집은 14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곳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매년 음력 10월 1일에 무당굿 형식의 마을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당산동 부군당굿이라고 합니다. 현재 당산동 부군당은 아파트 앞 오래된 건물 속에서 자취를 숨긴 채 마을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군당 옆에는 당산동을 수호한다고 알려진 ‘신목’(神木)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조선 초 어느 임금이 언덕을 지나다가 쉬었던 기념으로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한강 물이 범람할 때마다 이 은행나무는 근처 주민들을 구해주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다른 당산동 지역보다 이곳의 지대가 높아 홍수 때에도 물이 넘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1920년대 대홍수로 이곳이 잠겼던 때도 사람들은 은행나무에 매달려 살 수 있었습니다. 이후 후대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안녕과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한국전쟁 중 한 그루가 소실돼 한 그루만 남게 됐는데요.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약 30년 전에 행정당국에 건의해 그 옆에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현재는 두 그루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당산동의 지명의 유래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존재합니다. 당산동은 해당화의 ‘당’자를 써서 ‘당산(棠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읍지를 모아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이 지역은 해당화가 많아서 당산마을로 불렸다고 합니다.

당산동은 한 가운데 있었던 ‘단산(單山)’을 경계로 웃당산, 원당산, 벌당산으로 나뉘었습니다. 나중에 이들 세 고을이 합쳐져 ‘당산리’가 됐죠.



마을 신령을 모셨던 당산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다른 모습을 바뀌게 됩니다. 1912년 당산동부터 문래동 일대에 피혁, 방적, 기계, 맥주 등 각종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절 당산동에 있었던 공업시설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이 ‘조선피혁주식회사’입니다. 1911년 당산동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일본인이 세운 곳입니다. 주로 일본군에 보급되던 군수용 피혁제품을 만들던 곳이었는데요. 당시 조선에 풍부했던 소가죽을 활용해 청일·러일 전쟁으로 증가한 피혁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세워졌죠. 원래 이 회사는 경성(당시 서울) 시가지와 가까운 용산을 공장부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데라우치 총독이 “용산은 장차 시가지가 될테니 영등포를 생각해보라”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영등포 안에서도 지대가 높아 수해 염려가 적은 당산리에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두 번째 큰 공장은 철도차량을 제작하는 용산공작소 영등포공장(영등포공작창)이었습니다. 1919년 상당한 규모의 부지를 확보한 영등포공작창은 현재 영등포경찰서 앞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공작창 기능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영등포공작창은 폐쇄됐습니다. 현재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죠. 이외에도 당산동에는 대일본방적, 경성연와와 같은 중소형 규모의 공장들이 여럿 존재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당산동 일대는 일본군의 보급기지로 활용됐습니다. 한강 수로를 통해 군수물자를 중국 전선으로 내보내는 기지였죠. 이 시절 형성된 군용기지 이미지는 해방 이후까지 지속됐습니다. 1948년 10월 대한민국 육군 포병대대가 최초로 당산에서 창설됐습니다. 당산동 옆 문래근린공원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 전에 근무했다는 육군 6관구 사령부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 직전인 1960년 1월 21일까지 6관구사령관으로 재직했고, 지금 남은 지하벙커 자리는 쿠데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작전회의를 했던 곳이죠. 쿠데타 이후 1975년 군부대는 안양일대로 이전하게 됐고, 1986년부터 이곳은 문래근린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됐습니다. 이후 이곳에는 '5.16혁명 발상지' 비석과 박 전 대통령의 흉상이 함께 건립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흉상은 지난 2000년과 2016년 각각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지만 복구를 거듭해 공원에 남게 됐습니다.

■경공업 중심 지역에서 주거·공업 혼재 지역으로의 변신

지금도 그렇지만 당산동은 과거에도 주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조선피혁주식회사가 당산동에 세워지면서 이곳에는 영등포역에서 분기한 철도인입선이 들어왔습니다. 철도인입선은 특정한 공장이나 시설을 위해 일반 철도에서 선로를 분기시켜 해당 시설까지 연장 시킨 것을 말하는데요. 당시 경부·경인선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영등포역의 편리성을 이곳이 함께하게 되면서 현대 공업지역으로 부상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산동이 주요 공업지대로 부상하는 데에는 경인로의 역할도 컸습니다. 인천에서 부평과 부천을 거쳐 당산동에 이르는 경인로는 주요 공업지대를 연결하는 통로였습니다. 해방 후 본격적인 중공업 투자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당산동 일대는 한국 공업화의 상징인 경인공업지대의 서울 쪽 끝단이었습니다.



공업지역 색깔이 강했던 당산동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주거지역으로의 변신이었죠. 첫 시작은 과거 조선피혁주식회사 자리에 지어진 강남맨션이었습니다. 강남맨션은 1974년 준공된 아파트입니다. 총 26개동에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아파트 단지입니다. 강남맨션은 금강산업과 진흥기업이 힘을 합쳐 지었습니다. 조선피혁주식회사로부터 부지 2만2,356평을 매입하고 총 공사비 54억원을 들여 순수한 민간 자본으로 건설했습니다. 지난 이촌동 편에서 등장했던 한강맨션 기억하시나요? 그곳처럼 강남맨션도 대형 평수가 많아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로 명성이 높았다고 하네요. 현재 강남맨션이 있던 자리에는 재건축 아파트 단지인 당산래미안4차 아파트가 들어서 있습니다. 지난 1995년 재건축이 본격화 된 이 아파트는 2004년 공사를 완료하고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오랜 시간 당산동을 대표하는 ‘대장’ 아파트로 군림하다 얼마 전 입주가 시작된 당산센트럴아이파크에 그 자리를 내줬습니다.

강남맨션을 신호탄으로 당산역 주변으로 주거지가 형성됐습니다. 현대, 유원제일1,2차 아파트 등 각종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또한 아파트 단지 주위로 연립, 단독 주택들도 함께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산동이 단순 경공업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지하철 2호선 당산역의 역할이 컸습니다. 당산역은 1980년 10월에 개통된 8km에 달하는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까지의 최초 구간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2호선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1983년 구간이 연장되면서 당산역도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강남과 강북 중심을 순환하는 2호선이 개통되면서 도심으로의 접근성이 강화됐습니다. 지금도 당산동은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의 3대 업무지구인 광화문~서울역 중심업무지구(CBD)·여의도 업무지구(YBD)·강남업무지구(GBD)를 30분 내로 이동할 수 있죠. 2호선 개통 이후 사람들이 당산동으로 자연스레 모여들었습니다. 당산동은 이때부터 강남과 구도심을 대체할 주거지로 각광받게 됩니다.



지하철 2호선 당산역 바로 옆에 붙어있는 당산철교에도 이야기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산역과 합정역을 잇는 구간인 당산철교는 지난 1983년 11월 준공됐습니다. 1984년 5월 이 구간을 지나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교량의 열차 운행도 시작됐죠.

관련기사





상, 하부가 철제 트러스로 된 이 교량은 1990년대 초 안전에 대한 문제가 여러 번 제기됐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기관사들은 열차의 속도를 유지한 채 철교를 지나면 진동이 너무 심해 운행하기 무섭다는 우려를 꾸준히 제기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 10월 21일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실시한 한강 교량 정밀 진단을 벌인 끝에 당산철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당시 MBC 기자였던 최일구 앵커의 보도로 여론이 악화되자 당국은 1997년 1월 1일 철교 철거를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순환선이었던 2호선의 종점 역할을 당산역이 하게 되는 ‘웃픈’ 순간도 있었죠.

이후 1999년 11월 현대중공업과 진흥기업이 시공해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건설됐습니다. 지금은 방음 장치를 강화해서 주변에 끼치는 소음 공해를 최소화했으며 내진 설계까지 적용하여 1등급 교량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강북·여의도·강남 직장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신흥 주거지

2020년 당산동은 2030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주거지 중 한 곳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30 직장인들은 당산동의 직주근접성과 더불어 ‘몰세권’에 주목했습니다. 당산동 일대에는 총 10개의 대형마트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코스트코 양평점, 롯데마트 양평점, 빅마켓 영등포점 등 종류도 다양하죠.



최근에는 16년 만에 이곳에 새 아파트 대단지가 입주를 시작하며 지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당산동을 들썩이게 한 주인공은 5월 입주를 시작한 당산센트럴아이파크입니다. 지난 2018년 3월 일반분양 당시 평균 79.9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단지인데요. 최초 분양 당시 7억~8억원대에 공급된 이 아파트 단지의 시세는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량 훌쩍 뛰었습니다.

당산동 아파트 값의 고공행진은 신·구축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이렇게 이 아파트 단지의 시세가 오르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그렇지 않아도 교통 입지가 좋은 지역에 플러스 요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당산역에서 시작해 양천구 목동 지역을 지나는 목동선 경전철이 2022년 착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해당 노선이 개통되면 서울 내 대표적 학원가 중 한 곳인 목동 학원가를 한 정거장을 두고 이용할 수 있죠.

개발 호재도 충분한 편입니다. 서울시는 당산역이 속한 영등포구를 광화문, 강남 일대와 더불어 서울 3대 도심으로 선정하고 개발할 계획입니다.

당산역 부근 올림픽대로에 조성되는 첫 광역버스 환승정류장도 여러 호재 중 하나입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각종 호재가 겹치면서 당산동 일대 아파트 호가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당산역 일대 최대 단지인 당산삼성래미안4차 전용 116㎡는 호가가 16억원 선에 형성돼 있고 2017년 입주한 당산역롯데캐슬프레스티지는 전용 84㎡가 호가 14억~15억원에 매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재건축 단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당산동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한 요인입니다. 경인로 주변에 위치한 유원제일 1·2차 아파트 단지가 각각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원제일 1차 아파트는 지난 2019년 12월 사업시행인가가 나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유원제일 2차 아파트는 2019년 조합설립인가가 난 상태입니다.

“재건축 들어가요. 지금 매물은 없어요. 거래가 안되는 건 아니고 요건이 되는 사람은 할 수 있는데 잘 안 내놓지. 2년 있으면 이주하는데 뭐 팔려고 하겠어요. 나중에 새집 지어지면 그때 팔지” - 당산동 A공인중개사

■부족한 학군과 기반시설 개선 여지 부족은 여전한 약점

당산역 일대 부동산 가격의 ‘승승장구’는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부동산 전문가는 당산역 일대 부동산 매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매매를 할 시기는 아닌데…. 너무 지금 버블이 있으니까.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상황. 올라갈지 내려갈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 당산동 B공인중개사



부족한 학군도 가격 상승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탄탄한 학군이 필수적입니다. 불행하게도 당산동은 나쁘지 않은 초·중학교 학군에 비해 고등학교 학군이 크게 빈약한 편입니다. 옛 강서세무서 옆에 위치한 선유고등학교를 제외하면 인근에 가깝게 통학이 가능한 고등학교가 없습니다. 선유도에 진학하지 못할 경우 멀리 관악고, 여의도고, 여의도여고까지 먼 거리를 통학해야만 하죠. 이 때문에 입시생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당산 인근에 있는 목동으로 빠져나갈 여지가 충분합니다.

신길뉴타운이나 영등포뉴타운과 같은 주변 기반시설 개선의 여지가 적다는 것도 약점 중 하나입니다.

당산동은 그동안 강남, 뉴타운 지역에 비해 적은 관심을 받은 곳입니다.

오래된 경공업 지대와 낡은 기반 시설로 인해 꺼려지는 지역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교통, 유통시설 등 자신들이 가진 강점으로 약점을 극복해 온 당산동.

각종 개발이 완료된 후 달라진 당산동은 또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요?

/이종호·정수현기자 phillies@sedaily.com

/차현진 인턴기자 ckguswls3@sedaily.com

/김세림 인턴기자 tpfladudy@sedaily.com

/이종호 phillies@sedaily.com

이종호 기자
phillie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디지털미디어센터 이종호 기자 phillies@sedaily.com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사람의 마음을 울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을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서울경제 디지털미디어부에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기사로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더보기

이기사의 댓글(0)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