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시·도의원 후보 추천 등 막강한 권한을 쥔 당협위원장 가운데 최대 169명을 물갈이한다. 전체 당협위원장 중 3분의 2(66.8%)의 인적 쇄신이 예고된 것이다.
통합당은 당 소속의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따라야 하는 정강정책을 바꾼 데 이어 당명, 그리고 당협위원장까지 물갈이해 완전히 DNA를 바꿀 방침이다. 내년 재보궐 선거가 예정된 서울특별시장과 내후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 후보자를 뽑는데 큰 권한을 쥔 전국 당협위원장을 쇄신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당내 일부 ‘강경보수·극우’와 함께 활동하는 ‘고인 피’를 내보내는 큰 폭의 ‘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253개 지역구 중 낙선 147명, 2/3 피바람
28일 통합당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돌입하는 당무감사는 전국 253개 지역구 가운데 91%가 넘는 231곳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사퇴 등을 이유로 공석이 된 22곳은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새 당협위원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당협위원장은 선거구별로 구성된 당원협의회 책임자로 기초·광역선거 후보자 추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구의 ‘제왕’이다. 중앙당의 정책과 방향을 지역구 당원들에게 전달하는 동맥 역할도 한다. 이 때문에 당협위원장이 막아서면 중앙당의 지침과 혁신 정책이 지역구 당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동맥경화가 일어난다. 통합당에서는 당이 아무리 혁신을 외쳐도 지역 당협이 우편향돼 있어 지역구 경선만 치르면 강경보수 또는 극우 인사가 등장한다는 진단이 끊이질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가장 큰 패배를 맛본 통합당이 이번에는 제대로 전국 당협위원장을 ‘피갈이’하겠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통합당의 현직 지역구 의원은 84명으로 모두 당협위원장이다. 이들은 뺀, 국회의원이 아닌 원외 당협위원장이 있는 147곳과 사고 22곳 등을 포함한 최대 169곳이 이번 당무감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당협위원장으로 수혈된다.
이를 위해 이달 말 서울·부산·경남 지역의 당협위원장에 대한 특별 당무감사에 돌입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다소 지연됐지만, 화상 면접 등을 이용해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할 방침이다. 10월에는 다른 지역 당무감사도 시작해 늦어도 11월 말 또는 12월 초에 전국 253개 지역구에 대한 작업을 끝내는 인적쇄신을 단행한다.
썩은 피 내보내자, 민경욱·김진태 숙청 예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후 전국 당협위원장에 대한 쇄신은 예고됐다. 하지만 대규모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8·15 광화문 집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으로 피바람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 당 안팎에서는 집회를 주도한 ‘강경보수·극우’ 진영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세력에 대해 “심리 진단을 한번 해봐야 한다”고 비판했고, 당 중진인 하태경 의원은 “썩은 피를 내보내고 새 피를 수혈해야 보수가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36%까지 올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처음 더불어민주당을 넘어섰던 통합당은 8·15 광복절 집회를 기점으로 다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복절 집회에 나선 현직 당협위원장인 김진태 전 의원(춘천)과 민경욱 전 의원(인천 연수을), 유정복 전 인천시장(인천 동남갑) 등이 당무감사에서 대거 낙제점을 받아 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김 위원장은 태극기 집회에 대해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나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필요 없다. 무시해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들어올 새 피, 서울시장 이어 대선후보 결정
통합당 내에서는 “대대적인 쇄신을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내후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통합당 당헌(제69조)에는 대통령 후보자를 선거인단(전당대회 대의원·책임당원·일반당원) 투표결과 50%와 여론조사 결과 50%를 반영해 최다득표자를 후보자로 선출하게 규정돼있다. 광역지자체장도 이 규정을 따라 선출한다. 당협위원장은 선거인단 가운데 대의원 추천 등에서 큰 권한을 쥐고 있다.
통합당은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선 후 중도층과 호남의 표를 잡기 위해 △기본소득 △약자와의 동행 △민주화 성과 인정 △지역주의 극복 △노동존중 등을 반영한 새 정강정책을 마련했다. 정강정책은 당원이 대통령에 선출되면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당의 정체성이다. 새 정강정책에 맞춰 통합당은 당명도 새로 바뀐다. 그런데 이를 전국 지역구에서 반영할 당협위원장이 새 정강정책을 거부하면 새 정체성에 맞는 서울시장 후보와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선 사실상 ‘미니 대선’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분위기가 2022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의 정책은 인근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쳐 국민의 절반인 2,300만 명이 주목하는 선거다.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두고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면 말이 안 된다”고 할 정도다.
통합당 관계자는 “과거 분들을 교체해줘야 새 당협위원장을 중심으로 서울시장 선거와 전당대회, 대선 후보 경선을 하고 더 나아가 2022년 지방선거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준표·김병준 때 터진 ‘당협 반발’ 우려도
벌써 민경욱 전 의원부터 “어디서 굴러먹던 김종인 따위가 당으로 들어오더니 나더라 극우라고 한다”고 비판했고, 김진태 전 의원도 “전광훈 목사를 보러 광화문에 간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의리가 없으면서 무슨 정치를 하겠나”고 불만을 표했다.
실제로 통합당은 당협위원장을 교체할 때마다 피 튀기는 내전이 벌어졌다. 추진한 인사들도 이후 곤욕을 치렀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당 대표에 있던 2017년 12월 친박의 좌장이던 서청원 전 의원과 유기준 전 의원, 권영세 의원 등 현역 4명, 원외 58명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했다. 정치보복 논란이 일었고 서 전 의원이 당시 “고얀 것, 못된 것만 배웠다”고 맹비판하기도 했다. 홍 의원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패배로 사퇴하기 전까지 친박계 중진들과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막말 정치인’의 낙인이 생겼다.
2018년 12월 김병준 비대위도△ 2016년 총선 공천 파동 △국정농단 사건 △6·13 지방선거 참패 △기득권 안주 △검찰 기소 등을 기준으로 친박계 의원과 비박·복당파 의원 등 21명의 현역 의원의 당협위원장직을 사실상 박탈했다.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는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두 달 후 당은 황교안 전 대표 체제로 재편됐고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당의 요직에 다시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