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두뇌-기계 인터페이스 벤처인 뉴럴링크가 뇌에 아주 얇고 작은 컴퓨터 칩(전극과 모듈)을 이식받고 2개월 동안 생활한 돼지의 모습을 공개했다. 인간의 두뇌에 컴퓨터 칩을 심으려는 뉴럴링크가 먼저 돼지에 임상시험을 한 것이다.
이 회사는 빠르면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어 마비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컴퓨터 칩 이식 임상시험에 들어가기로 했다. 마치 치과에서 손상된 치아를 임플란트 하듯이 뇌에 컴퓨터 칩을 임플란트해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꽤 오래 걸리겠지만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성공적으로 작동시키면 알츠하이머·우울증·뇌전증(간질) 등 뇌질환이나 척추손상 등을 치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28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유튜브를 통해 기억력 감퇴, 청력 손상, 우울증, 불면증 등을 언급하며 “이 장치를 이식하면 실제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기가 기억 상실부터 뇌졸중, 중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경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심장 마비가 있는 경우 경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칩(링크 0.9)은 23mm×8mm의 동전 모양으로 뇌파 신호를 수집하는 아주 얇은 전극과 함께 외부 블루투스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작은 모듈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에는 이 모듈이 별도로 존재했으나 이번에는 칩 속에 통합됐다. 머스크는 “이 칩은 두개골에 작은 전선이 달린 핏빗(Fitbit)과 같다”며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 앱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칩은 수집한 뇌파 신호를 초당 최고 10메가비트(1,000만비트)의 속도로 무선전송할 수 있고 한 번 무선충전하면 하루 종일 쓸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머스크는 칩 이식 수술이 자동으로 가능한 캐나나 워크 스튜디오(Woke Studio)의 ‘V2’ 로봇도 공개했다. 이 로봇은 1시간 동안에 뇌에 직경 5마이크론(1마이크론은 100만분의 1m)의 미세 전극 1,024개를 심을 수 있다. 현재는 뇌 피질을 건드리는 정도이지만 신경세포가 밀집된 뇌 깊숙한 곳의 회색질에 칩을 심는 게 목표다.
이날 머스크는 눈앞에서 돌아 다니는 돼지를 보며 컴퓨터 칩을 2개씩 이식한 돼지 3마리와 이식 경력이 있는 돼지 1마리가 일반 돼지와 다를 바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식된 칩에 입력된 자료에 따라 러닝머신에서 고도로 정확하게 다리를 움직이는 돼지의 걷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후각이 발달한 돼지가 코를 킁킁거릴 때 뇌로 전달되는 신호를 칩이 실시간으로 파악해 기록하는 장면도 선보였다. 일부에서는 “사이보그 돼지’(Cypork)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 나오기도 했다.
머스크는 “이번 방송은 투자금을 유치하려는 게 아니라 우수 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행사”라고 말했다. 2016년 창업한 뉴럴링크는 현재 인력이 100여명인데 앞으로 로봇공학·전기·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해 나갈 방침이다.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1만명까지 규모를 늘리고 싶다고 했다.
프리젠테이션에 배석한 매슈 맥두걸 뉴럴링크 수석의사는 “마비 증세를 보이는 소규모 환자들을 대상으로 첫 임상시험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증 척수손상을 가진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컴퓨터 칩을 이식해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이날 장기 목표가 손상된 척추에 컴퓨터 칩을 임플란트해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머스크는 “이 장치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와 연결돼) 인공지능(AI)과 합쳐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처음 출시될 때 상당히 비싸겠지만 가격을 수천 달러로 낮추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 두뇌에 아주 얇고 유연한 전극을 대거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고 생각만으로 전자기기를 조정하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의료계에서 뇌에 전극을 이식해 파킨슨병이나 뇌전증을 치료하거나 몸이 마비된 사람이 뇌 신호로 컴퓨터를 작동하거나 로봇팔을 움직이기도 했으나 뉴럴링크는 이보다 훨씬 더 진화해 공상과학(SF) 영화같은 세상을 열겠다는 것이다. 앞서 머스크는 작년 7월 “내년 말까지 인체시험을 위한 임상 승인을 얻을 것”이라며 “뇌 임플란트 프로세스를 눈 라식 수술만큼 간단하고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피력했었다. 당시 뉴럴링크는 재봉틀같은 로봇으로 1,500개의 매우 얇은 전극을 쥐의 뇌에 이식해 정보를 읽는 시스템을 시연했다.
하지만 에이미 오스번 미국 워싱턴대 교수(신경 인터페이스 연구)는 “칩 주변의 조직 손상, 측정의 질, 뇌신호를 해석하는 기계학습 알고리즘 발전 등에서 과학자들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이 장치가 뇌와 같은 부식성 환경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