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다수 의대생들의 반발에도 정부가 내일 열리는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 시험을 예정대로 치르기로 하면서 의-정간 정면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은 “단 한명의 제자라도 부당한 조치가 가해질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가 업무개시 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를 고발한 데 이어 국시에 거부한 의대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 대학 교수들까지 나서면서 정부와 의료계간 최악의 충돌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이 국가시험 자체는 일단 예정대로 치르려는 분위기인 가운데 많은 학생이 응시해 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주요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집단휴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의대생과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도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에 따르면 지난 28일 기준으로 전체 응시자 3천172명 중 약 89%인 2천823명이 원서 접수를 취소했다. 국시원은 현재 시험 취소 신청서가 본인 자의에 의한 것인지를 개별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손 반장은 이와 관련해 “집단적 분위기에 따라 개인 의사가 충분히 표현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연락해 시험 취소 의사를 확정할 계획인데 현재 연락이 안 닿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어서 의사 확인에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응시 의사를 명료하게 밝힌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고려를 분명히 해줘야 하고, 또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집단적으로 의사를 밝힌 학생들에 대해서도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과정을 함께 고려해서 전체적으로 국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의료계 쪽과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응시생의 90%가량이 시험을 취소함에 따라 의대 국시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의대 국시를 예정대로 치를 경우 무더기 취소 사태로 인해 내년에 의료인력 부족에 따른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손 반장은 “대비책보다는 최대한 많은 의대생의 의사를 확인해서 이번 국시 취소 사유가 본인의 의지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많은 응시생이 국시를 볼 수 있게 전념 중이다”라고만 답했다.
반면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정부에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연기해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KAMC는 “엄중한 코로나19 상황에서 40개 의과대학 학장단은 의사 실기시험의 실행으로 인한 감염병 확산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실기시험을 채점하는 교수는 대부분 병원에서 진료를 담당하는 임상교수”라며 “병원의 의료공백을 최소화하는 인력이므로 실기시험 참여 후 확진자 발생으로 격리돼 업무 복귀할 할 수 없을 경우 의료 인프라 붕괴가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응시생과 채점 교수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 될 때까지 연기할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가 국시를 예정대로 치를 경우 의료인력 부족 사태는 물론 전국 의대교수들의 집단 행동까지 우려되고 있다. 이날 경북대병원 교수들은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며 피켓 시위에 돌입했다. 김상걸 경북대 의대 교수회 의장(칠곡경북대병원 외과 교수)은 “빌미를 제공한 건 정부”라며 “잘못된 정책을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예상됨에도 밀어붙이는 것에 전공의들이 문제를 제기한 건 교수로서 봤을 때 정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대, 성균관의대, 경희의대, 울산의대, 고려의대, 한양의대, 가천의대 교수 등도 이미 정부에 대해 정책 재검토를 촉구하며 전공의, 의대생 등 제자들에게 불이익이 생길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냈다. 일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 집단휴진 등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