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대한민국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료는 인간에게 제공돼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서비스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는 부자든 가난하든 권력자든 아니든 그 누구도 차별하지 말고 제공돼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한 사람의 생명체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료가 제공되는 방법이나 제도적인 측면에서 모든 국가가 동일하지는 않다. 의료 사회주의적 정책을 채택한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기 위해 국가에서 개입해 조절하고 통제한다. 의료시설, 인건비, 의료인 양성 등 의료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1일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박지현(왼쪽) 비대위원장 겸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호재기자1일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박지현(왼쪽) 비대위원장 겸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국가는 국민이 납부한 세금에서 비용을 충당해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고, 국민은 무료로 누구나 동일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호주·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민 누구나 병이 들면 공정하게 순서대로 진료를 받는다. 의료가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에 걸려도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나라에서 의료는 공공재다.

하지만 최근 의료 사회주의 시스템을 채택하는 나라에서도 온전히 공적 제도로서 운용되는 시스템의 문제점들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약 10~15% 정도는 사적 의료 시스템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달리 미국 같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병원이나 보험회사가 주축이 된다. 의료 수가(진료비)나 의료행위를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다. 의료행위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국가는 극빈층이나 노인·장애인 등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만 두고 있다.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의료 혜택·품질에 차이가 매우 크다. 응급실을 한번 갔다 오면 기본적으로 몇 백만원의 비용이 든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의사가 되기 위해 개인이 대학 등록금을 납부한다. 의사가 된 이후에도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 과정에 드는 비용을 병원이 부담한다. 의사가 되기까지 국가는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다. 병원을 개업할 때도 빚을 내든 결국 자기 돈으로 시작해야 하고, 병원이 부도나면 개인 책임이지 국가는 일절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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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료행위에 부과되는 수가는 정부가 결정한다. 의료행위가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는 정부가 의료행위에 간섭하고 조정한다. 이는 유럽에서 채택하는 의료 사회주의도 아니고 미국식 의료 자본주의도 아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


지금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파업은 겉으로 알려진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기 때문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주장처럼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최악의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2038년부터다. 지금의 전공의들에게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젊은 의사들은 비판 여론에도 파업하는 것일까. 이는 그동안의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서다.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임기응변을 반복해 누더기가 된 의료정책으로는 한국의 의료행위가 더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드는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고, 의사가 된 다음에는 공공재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의료를 공공재로 만들고 정부가 의료정책을 좌우하려면 적어도 의료인 양성 비용부터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1963년 의료보험법 제정 이후 우리 의료정책은 저부담·저급여 기조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진정 국민을 위한 근본적인 의료 개혁이 필요한 때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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