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을 환자 대신 수령해 배달하는 서비스의 합법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의약품 대리 수령 및 배달서비스를 개발한 기업은 “정부로부터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약사들은 “의약품 배송은 약사법 위반”이라고 맞서고 있다. 과거 ‘타다’ 서비스가 정부로부터 사업의 합법성을 묵시적으로 인정받았지만 택시사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된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어 ‘제2의 타다’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약사회(회장 김대업) 서울지부는 최근 회원 약사들에게 의약품 대리수령 서비스는 불법이기 때문에 제휴를 끊어달라고 고지했다. 서울시약사회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모든 의약품의 배송행위는 약사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배달행위를 허용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불이익을 당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를 모르고 가입한 회원은 제휴약국에서 탈퇴해달라”고 당부했다.
스타트업인 닥터가이드는 모바일 플랫폼 ‘배달약국’을 개발해 지난 3월부터 대구 지역 30여 약국을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서울 지역으로 영업을 확장했다. 배달약국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은 처방전을 이용해 의약품을 배달받을 수 있는 온·오프라인연결(O2O) 서비스다. 환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처방전을 입력하고, 근처 약국을 배정받으면 원격으로 복약지도를 받은 후 약국 방문 없이 의약품을 수령할 수 있다. 닥터가이드는 구글과 중소기업벤처부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지원 대상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대리수령 서비스는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현행 약사법은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약국에서 의약품을 교부하는 과정이 ‘판매’ 범위에 들어간다고 해석하는 셈이다. 다만 대리처방과 대리수령을 수행하는 자의 자격 같은 세부사항은 규정돼 있지 않다. 대한약사회는 닥터가이드가 이 같은 점을 이용해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의약품은 온·습도에 예민해 취급에 주의와 전문성이 요구되고, 변질될 경우 생명에 직결되기에 대리배송 서비스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가짜 약이 배송되거나 대형 병원·약국의 독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반면 닥터가이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가능해진 서비스로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배달약국 서비스는 보건복지부 공고에 근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보건소로부터 환자가 약국에서 의약품을 대리인을 통해 배달받는 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택배 배송이 아니라 한정된 권역에서 이뤄지는 안전배송 서비스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사로부터 수수료나 회원 가입비 등을 일절 징수하지 않기 때문에 약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배달약국 서비스를 통해 의약업계 시장이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장지호 닥터가이드 대표는 “배달약국 서비스의 수익모델은 역시 약국에 있지 않다”며 “환자맞춤 보험추천, 보험자동청구를 시작으로 ‘건강관리 플랫폼’으로서 약사님들과 함께 신산업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의약품 배달 서비스는 해외에서는 이미 하나의 사업모델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는 온라인 의약품 배송 서비스인 ‘필팩(PillPack)’은 지난 2018년 아마존에 전격 인수돼 ‘아마존 파머시(아마존 약국)’라는 브랜드로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는 이번 의약품 배송 합법성 논란이 ‘제2의 타다 사태’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과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두고 모빌리티 신구 산업 간 갈등이 표출됐던 ‘타다 사태’와 이번 논란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타다 측은 여객법에 따라 11인승 렌터카를 이용해 모빌리티 사업을 했고, 택시 업계는 이를 불법 영업으로 규정해 반발했다. 모빌리티 선두 주자였던 타다는 검찰 수사를 받기에 이르렀고,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영업을 중단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타다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해외에서는 활성화된 ‘우버’나 ‘디디추싱’ 같은 다양한 승차공유·모빌리티 서비스 개발이 늦어졌다”며 “코로나19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고 있는 스타트업에 또다시 재앙이 불어닥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