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콘스탄티누스 3대의 골육상쟁

337년 로마제국 분할과 통합

콘스탄티누스 대제 세 아들의 로마제국 분할을 상징화한 그림. /VCoins Community콘스탄티누스 대제 세 아들의 로마제국 분할을 상징화한 그림. /VCoins Community



337년 9월9일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세 아들이 피바람을 일으켰다. 부친 사망 이후 110일간의 유화책을 버리고 대숙청을 단행한 것. 먼저 삼촌 둘을 죽였다. 콘스탄티누스가 부제로 임명한 두 이복동생이 자식들과 함께 무참하게 살해됐다. 콘스탄티누스의 두 매제와 친위대장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학살의 근거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어가면서도 손에 쥐고 있었다는 양피지. ‘두 이복동생이 자신에게 독을 먹였으니 세 아들이 복수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진다.

임종을 지켜본 둘째 아들에게 은밀히 전달됐다는 유서는 조작됐다는 게 정설. 그러나 주교 중 한 사람의 보증을 군대가 그대로 믿었다. 대숙청이 끝난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혈육은 다섯밖에 남지 않았다. 아들 3형제와 조카 둘.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은 삼촌과 4촌 형제들을 모두 죽였지만 나이가 어린 두 사촌동생 갈루스(12세), 율리아누스(6세) 만큼은 남겨 놓았다. 하긴 그들도 나이가 젊었다. 첫째 콘스탄티누스 2세가 21세, 둘째인 콘스탄티우스 2세는 20세, 막내인 콘스탄스는 14세에 불과했으니까.


어린 권력자들이 대숙청을 단행한 데는 근친 증오의 유전자가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인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해 ‘대제(Magnus)’로 불렸으나 권력을 위해 장인과 처남·매제까지 죽인 냉혈한이었다. 전처 소생 아들 크리스푸스(29세)가 전공을 쌓아 병사들의 신망이 높아질 무렵(326년), 후처인 파우스타(3형제의 어머니)와의 간음죄를 물어 혹독한 고문 끝에 죽인 적도 있다. 크리스푸스를 무고했던 파우스타도 뜨거운 목욕탕에 갇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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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제국을 물려받은 3형제는 1년 뒤 땅을 나눴다. 분할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첫째는 막내의 이탈리아 땅을 노리고 싸움을 걸었으나 참패하고 24세 나이에 전사하고 말았다. 제국 최고 실력자로 떠오른 막내의 권력도 350년에 끝났다. 황제를 참칭한 이민족 출신 부하 장군에 반란으로 27세에 생애를 마쳤다. 유일하게 남은 둘째는 상대적으로 오래 살았다. 홀로 권력을 독점하며 43세에 병들어 죽었다.

죽기 전에 둘째는 방대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사촌동생 갈루스를 부제로 임명했으나 의심병이 도져 죽였다. 남은 혈육 율리아누스는 철학자로 교육받다 갑작스레 부제로 임명되고 제국을 온전히 물려받았다. 기독교 박해자로 유명한 율리아누스 역시 무리한 페르시아 원정 후유증으로 363년 사망(32세)함으로써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혈통도 끊겼다. 3대에 걸친 골육상쟁의 허망한 말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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