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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도자기가 소박? 모더니즘 깃든 생활예술 그 자체"

■'한류미학' 저자 최경원 인터뷰

디자인 전공자의 눈으로 본 우리 유물

직접 스케치한 그림과 함께 책으로 내

"권력 과시용 아닌 실용성 초점 맞춰

비례·색채·기하학적 단순화 등 탁월"

‘한류 미학’ 저자 최경원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한류 미학’ 저자 최경원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인들은 우리 도자기를 보고 두 번 놀랍니다. 일본 도자기에 비해 화려하지 않음에 놀라고, 일반 백성들이 흔하게 도자기를 쓰고 있음에 또 놀라죠.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들에겐 도자기가 소수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이었지만 우리에겐 대중 생활용품이었던 겁니다. 조선 도자기가 소박하다는 생각도 잘못된 겁니다. 그 시대에 이미 모더니즘과 추상성의 요소가 가미된 거예요.”

서울 마포 연남동의 현 디자인연구소에서 만난 최경원 대표는 구석기 시대 주먹 도끼부터 백제 무령왕릉 금관, 고려 청자와 조선 분청사기까지 우리의 대표 유물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달리 보이는지 동서양의 역사, 문화, 철학까지 곁들여 설명했다. 그가 최근 발간한 책 ‘한류미학(더블북 펴냄)’만큼이나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최 대표는 고고미술사학이나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다. 서울대 미대 산업디자인과에서 공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다수 디자인 전공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서구 현대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 후 생각이 달라졌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들은 모두 자신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 내고 있었다.

최경원 대표가 직접 스케치한 고구려 불꽃문 투조 금동보관.최경원 대표가 직접 스케치한 고구려 불꽃문 투조 금동보관.


“저도 우리 역사와 유물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박물관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완전 다른 세상이 있더군요. 보면 볼수록 대단했고, 그렇게 우리 유물에 매혹됐습니다”


그 때부터 일 년 동안 최 대표는 한 주도 빠짐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방학 때는 전국 박물관을 돌고, 국내 답사를 마친 후에는 해외 박물관을 돌기 시작했다. 그럴록 그는 점점 우리 유물의 남다름을 확신했다. “유럽 박물관에 가면 주눅 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럽의 크고 화려한 유물은 정치적 도구, 과시용입니다. 봉건 국가의 왕이나 영주가 농노들에게 ‘힘’을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백성에게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주는 게 더 중요했죠.”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화당초문 매병/국립중앙박물관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화당초문 매병/국립중앙박물관


그렇다고 우리 유물이 대충 만들어진 건 결코 아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최 대표 눈에는 황금비례, 색채, 실용성, 기하학적 단순화 등이 달리 보인다. 사용하기 쉬우면서도 현대 디자인의 요소들이 촘촘히 적용돼 있다. “고려청자 색깔이 단순히 오묘한 게 아닙니다. 색채 디자인 관점에서 ‘저채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채도는 삼원색을 다 갖고 있어요. 빨강과 파랑, 노랑이 다 보입니다. 그래서 질리지 않죠. 요즘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들이 저채도를 사용합니다.”

최경원 대표가 직접 스케치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백제 금동대향로.최경원 대표가 직접 스케치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백제 금동대향로.


한편으로 실용품이 아닌 장식용 유물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다. 굳이 많이 만들지 않았을 뿐이지 못 만든 게 아니란 뜻이다.

“시대를 앞서 간 물건들이 당대에 소비될 수 있었던 건 공급자만큼이나 수요자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주자학의 원리가 적용된 조선의 달항아리, 지금 봐도 세련된 백제의 보도블록 전돌 등이 더 대단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가 우리 유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많이 가리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글·사진=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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