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살 집을 구하겠다면서 알아볼 집의 계약금 조로 전세금 10%를 받아간 세입자가 갑자기 ‘집이 안구해진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겠다고 말을 바꾸네요.”
실거주 용도로 집을 매수한 A씨는 ‘버티는 세입자’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매매 계약 때 세입자가 나가기로 한 터라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못나가겠다’고 말을 바꾼 탓이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세입자는 “법이 어려워 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며 “매수자 사정 때문에 집을 구하고 있으니 이사비·복비 정도는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부동산에서는 “분쟁으로 가면 매수자만 손해”라며 요구를 들어주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실거주 매수자의 ‘실거주 불가’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버티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뒷돈’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법 해석이 세입자 입장에 치우친 탓에 청구권 사용을 두고 말을 바꾸는 세입자가 생겨도 매수인 입장에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래 계획대로 이사를 갈 예정이었던 세입자들도 이사비 명목으로 지원금을 요구하는 등 뒷돈이 관행화 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실제로 부동산 카페 등에는 ‘세입자 내보내기’에 비상이 걸린 실거주 매수인들의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다. 합의금 명목의 금전적 보상을 제공했더라도 세입자가 ‘법을 잘 몰랐다’거나 ‘집이 구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전세금 10%’ 선지급은 기본적인 수준이다. 세입자가 집을 보러 다니다가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할 경우 전셋값의 10% 수준을 계약금 조로 지급해야 하니 나중에 받을 전세금의 일부를 미리 받아야 한다는 이유다. 매수인 사정으로 이사를 한다는 이유로 새로 구하는 전셋집 복비도 요구하는 식이다.
여기에 이사비용까지 요구하는 세입자들도 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돈이 없어 계약이 깨졌다’고 하면 되레 난처한 사정이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집주인은 “당연한 듯 뒷돈 요구를 하는 걸 보면 관행처럼 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건 허술한 제도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세입자와 집주인의 청구권 포기에 대한 ‘합의’를 인정한다면서도 세입자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말을 번복할 경우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며 두루뭉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장 실거주 용도로 집을 구입한 집주인으로서는 언제, 어떻게 결론이 날지도 모르는 분쟁조정위나 법원을 찾는 편이 더욱 불리하다. 이 같은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당사자끼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과정에 대해 뭐라 하기 어렵지 않겠냐”며 “세입자 측에 도움을 주는 제도를 마련한 만큼 그렇게 무리한 요구가 나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