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무고 사건에서 피고인의 법리적 주장이 중간에 일부 바뀌더라도 유죄를 확정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 2부는 피고 A씨를 상대로 검찰이 낸 무고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했다고 17일 밝혔다. 피고인은 앞서 1·2심에서 피해자 B씨와의 관계에 대한 법정 진술이 일부 바뀌었는데 이를 허위사실 주장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A씨와 B씨의 관계는 대학교에서 시작됐다. 남편과 사별한 후 심리학 박사과정에 진학한 A씨는 지도교수인 B씨를 만났는데 이후 A씨는 B씨에게 심리 개인상담을 받다가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A씨는 B와 산책, 운동 등의 활동을 함께 하고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부인이 있는 B씨와 관계가 나빠지자 A씨는 B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고소했다.
B씨가 박사논문 지도교수로서 지위를 이용 폭행·협박해 자신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씨가 무고죄로 맞고소 했고 이후 둘 사이의 내연관계가 밝혀지자 A씨는 B씨가 자신을 길들여서 성적으로 착취하는 ‘그루밍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진술을 수정했다.
이 사건에 관해 1심과 항소심은 피고 A씨의 유죄를 결정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B씨가 자신을 폭행·협박해 강간했다는 취지로 고소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내연관계가 드러나자 ‘그루밍 수법’이었다는 취지로 주장을 변경했는데 이는 당초 고소사실과 그 주요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라며 “피고인은 상담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전문지식을 갖춘 상태인 만큼 B씨에 의한 ‘학습화된 무기력’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B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의존성 성격장애 등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진단서 등을 제출했는데 재판부는 관련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의 최초 고소 내용과 일정 시점 이후 피고인의 주장이 그 주장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라고 본 원심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2심 재판부는 A씨가 주장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그루밍 범죄를 다른 진술로 봤지만 이 둘을 명백히 구분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B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합의로 성관계를 했는지 여부는 무고 고소 사실이 허위인지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며 “피고인이 내린 주관적 법률평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고소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