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단독]김재철 "AI 강국 실현" 퇴직금까지 아낌없이 내놨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500억 기부

"AI 이해 못하면 미래 기약 못해"

지난해 한양대에도 30억원 지원

KT·KAIST·LG·등과 ‘AI 원팀’ 구성

AI 접목 한국형 스마트팜 운영도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거꾸로 된 세계지도 앞에서 팔장을 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거꾸로 된 세계지도 앞에서 팔장을 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김재철(85·사진)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꿈 중 하나는 ‘대한민국 인공지능(AI) 강국’이다. AI 과학자와 산업, 서비스 응용 인력이 미국·중국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AI 퍼스트’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00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도 우리 AI 수준을 대폭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내 AI 전문가들은 “AI 세계 최강인 미국을 100으로 보면 중국은 30%까지 올라간 데 비해 한국은 3~5%, 많이 쳐야 10%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중국의 경우 10년 뒤 AI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비전의 ‘AI 굴기’ 전략을 펴고 있다. AI가 기존 제조업의 혁신은 물론 신산업 육성, 의료·교육·문화 등 서비스업의 도약도 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파워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회를 맞은 바이오·생명과학을 키우고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경기도 이천에 구축한 스마트팜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경기도 이천에 구축한 스마트팜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김 명예회장은 지난해 4월 퇴임 당시 “4차 산업혁명과 AI라는 새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며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동원의 미래 50년은 AI로 승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회장 시절에도 AI 관련 국내외 서적을 탐독하고 임직원들에게 권하며 토론하는 등 육성 의지가 컸다. 퇴임 1년 전에는 경기도 이천에 AI 기술 등을 접목한 한국형 스마트팜을 구축했다.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조절과 수경재배를 위한 영양공급까지 자동제어하는 이 스마트팜은 지난해부터 재배에 들어갔다. 그가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차남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등과 함께 올봄 신성철 KAIST 총장을 만나 ‘AI 퍼스트’에 공감대를 이룬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명예회장은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세계 최대 수산기업인 동원그룹과 투자금융 강자인 한국투자금융그룹을 키워냈다. 누구보다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고 평했다.

KAIST ‘AI대학원’ 첫 화면. /홈페이지 캡처KAIST ‘AI대학원’ 첫 화면. /홈페이지 캡처


자녀들도 산학연 AI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현모 KT 사장 등이 발의해 산학연 연합군으로 지난 2월 출범한 ‘AI 원팀’에는 KAIST와 한국투자증권이 같이했고 동원그룹도 지난달 제조·영업·물류 혁신 차원에서 합류했다. AI 원팀에는 한양대, 현대중공업그룹,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LG전자, LG유플러스가 참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 명예회장이 KAIST의 AI 연구가 잘돼야 국내 AI 생태계도 키우고 회사와 시너지도 낼 것으로 보지 않았겠느냐”고 전했다.

KAIST는 김 명예회장의 후원이 이뤄지면 지난해 가을 연 ‘AI대학원’을 비롯한 AI 연구개발(R&D) 역량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AI대학원에 10년간 최대 190억원을 지원하는 것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KAIST는 내년에 AI대학원을 확대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AI연구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AI대학원의 한 교수는 “우리 대학에서 AI 전공 교수의 연봉이 연구비를 제외하고 7,000만~8,000만원에 그치고 연구환경도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며 “미국의 경우 AI 핵심인재가 대학에서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고 글로벌 기업에서는 10억원까지도 받는다”고 전했다.

2016년 봄 ‘알파고 쇼크’가 우리 사회를 강타했지만 AI대학원은 KAIST·고려대·성균관대가 지난해 가을, 포항공대(포스텍)·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올봄, 연세대·한양대·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올가을에서야 문을 열었다. 서울대의 경우 AI대학원을 설립하지 않고 고(故)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이 지난해 초 기부한 500억원으로 ‘해동 AI센터’를 오는 2023년 완공하기로 했으며 지난해 AI위원회와 AI연구원을 설립했다.

반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우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의 기부금 3억5,000만달러(약 4,060억원) 등 총 10억달러 규모의 ‘스티븐슈워츠먼컴퓨팅칼리지’를 지난해 가을 열었다. AI와 인문학을 융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슈워츠먼 회장은 같은 취지로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에도 1억5,000만파운드(약 2,250억원)를 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명예회장의 통 큰 기부는 AI 핵심인재 양성에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는 동원산업을 통해 한양대에 중소·중견기업 AI 지원을 위한 ‘한양AI솔루션센터’ 설립자금으로 3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퇴직금을 사양한 채 간접적으로 기부한 것이다. 동원 측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산학연이 같이 AI 원천·응용연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동원산업을 창업한 해인 지난 1969년 8월에 회사의 첫 원양어선인 ‘제31동원호’ 출항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동원산업을 창업한 해인 지난 1969년 8월에 회사의 첫 원양어선인 ‘제31동원호’ 출항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 “과감한 AI 투자” 강조


50년간 5대양 6대주 누비며 ‘장보고 정신’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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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좋은데 왜 분단국 남아 있는지 고민해야”

지난 1935년 전남 강진에서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강진농고·부산수산대를 졸업하고 1958년 국내 최초의 참치잡이 원양어선 무보수로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몇 번을 찾아가 ‘1년간 돈을 안 받고 죽어도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원양어선을 탈 수 있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이 80달러에 불과할 때 처음 배를 탔는데 외국에서 괄시와 홀대도 많이 받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때로는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위험천만한 일이라 바다에서 희생자도 많았습니다.”

그는 원양어선을 타고 지구 200바퀴 이상을 돈 끝에 1969년 창업에 도전한다. ‘물고기를 잡아 갚겠다’며 일본 기업한테 37만달러짜리 원양어선을 도입해 동원산업을 창업한 것이다. 그는 퇴임사에서 “1969년은 인류 최초로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딘 해”라며 “선진국이 달에 도전할 때 동원은 바다 한가운데에 낚시를 드리워 놓고 참치가 물기를 기다리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참치 배를 갈라 섬 주민들에게 뱃속에 있는 작은 물고기를 보여주며 어디에 많이 있는지를 물어 참치잡이를 했다. 이런 역발상이 주효해 참치를 대거 잡아 들여 대부분 수출하며 외화를 벌었다.

중동전쟁이 터진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는 회사 자산보다 많은 액수(1,254만달러)짜리 국내 최대 규모 4,500톤급 배를 건조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1979년 동원육영재단을 창립하고 장학 및 교육사업을 펼쳤다. 현재 전국 11개 대학에서 독서·질문·토론을 통해 전인교육을 하는 ‘라이프아카데미’를 후원하고 있다.

1982년에는 공전의 히트를 친 ‘참치캔’을 처음 출시한 데 이어 공매로 나온 한신증권을 사들여 원양어선에서 쓰던 인센티브 체제를 적용해 오늘날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큰 배를 구입하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전년도에 영어를 능숙하게 못해도 미국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이수하며 인재들이 투자금융업에 몰리는 것을 보고 증권업에 눈을 떴다”는 게 그의 회고다.

1990년에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됐다. 장기간 바다에서 배를 타며 우주와 지구에 관한 여러 생각을 하며 지구의 지도를 거꾸로 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 삼아 태평양으로 나갈 봉화대처럼 당당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앞서 그가 바다에 관해 쓴 글은 1965년부터 약 30년간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장에 취임한 1999년에는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이후 12년간 적극 매달렸다. “이미 9세기에 수백척 선단을 끌고 중동까지 세를 떨쳤다. 도자기 등 국제무역을 장악하고 정치·군사·종교·문화 모두 걸출한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는 게 그의 평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는 세계 최대 참치캔 회사인 스타키스트가 매물로 나오자 3억6,300만달러를 들여 인수했다. 인수 당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반년 만에 흑자전환하며 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로 키웠다.

최근 몇 년간은 세상의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작년 10월 퇴직금을 받지 않고 동원산업을 통해 한양대에 30억원을 기부한데 이어 추석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00억원을 기부해 AI 핵심인재를 육성하기로 했다. AI가 접목된 한국형 스마트팜을 구축, 지난해부터 재배에 들어가며 이 기술을 농민들에게 널리 보급할 계획도 갖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국가 경쟁력 확대를 위해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AI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명예회장은 지난해 말 서울교대 특강에서 “만주벌판에서 말 달리며 그 넓은 땅을 다 차지했던 우리 민족이 왜 지금 한반도의 반 토막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 국민은 머리가 좋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도 매우 좋은데 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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