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KPGA 신인 이유호 "'1버디 1만원' 나누며 생명의 소중함 느껴요"

삼수 끝에 1부 올라온 장타자

버디 만원·이글 2만원씩 기부

컷 통과 못하고 상금 못받아도

자살예방기관에 ATM 송금

"도움은 크든 작든 시작이 반"

이유호 /사진제공=KPGA이유호 /사진제공=KPGA



대회를 마친 다음날인 월요일마다 은행 자동화기기(ATM)를 찾는 골프선수가 있다. 들어온 상금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회기간 모은 돈을 기부하기 위해서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신인 이유호(26)에게 월요일 ATM 방문은 중요한 의식과도 같다. 이유호는 “일부러 ATM까지 가는 게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들을 생략하지 않으면 스스로 좀 더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호는 매 대회 버디 하나에 1만원, 이글 하나에 2만원씩 돈을 모아 꼬박꼬박 사회복지법인에 전달하고 있다. 시즌 끝나고 한번에 전달하거나 자동납부하는 게 편할 것 같은데 그는 굳이 불편함을 택했다. 불편함을 이길 만큼 여러모로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아, 내가 이번 대회에서는 버디 몇 개를 해서 그래도 이렇게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하고 작은 기쁨을 얻을 수 있어요. 그만큼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컷 통과에 실패해 상금을 한 푼도 못 벌 때도 반드시 ATM을 찾아 버디·이글 적립금을 전달한다.


이유호는 후원사도 없는 루키다. 하루하루 성적에 쫓길 수밖에 없는데다 1년 차라 주변 시선도 신경 쓰였을 텐데 여유를 내고 용기를 냈다. 후원사는 없지만 오른 팔뚝과 모자 옆면에 로고를 달고 뛴다. 그가 돕고 있는 단체인 ‘서서울생명의전화’ 로고다. 돈을 받고 다는 로고가 아니라 ‘이 단체를 알리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붙인 것이다. 자살예방기관과 협약한 것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서다.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저마다의 고통으로 세상을 등지는 분들이 많잖아요. 힘든 분들이 정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생명의 소중함은 저버리면 안 될 텐데 거기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려고 시작한 일을 통해 이유호는 버디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버디라는 점수가 어느 순간 너무 흔하게 느껴졌었는데 요즘은 좋은 일에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정회원 테스트를 다섯 차례나 낙방한 뒤 여섯 번째에 붙은 이원호는 퀄리파잉 토너먼트도 삼수 끝에 합격해 올해 마침내 1부 투어에 발을 디뎠다. 그래서 더 절실할 수밖에 없는 투어 생활을 그는 작지만 큰 실천을 통해 더 풍성하게 가꿔나가고 있다.

기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응원군도 제법 많이 생겼다. 잘 몰랐던 동료들도 먼저 다가와서 ‘나도 기부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 거냐’ ‘정말 적은 금액도 괜찮냐’고 물어온다. 이유호는 “저처럼 상금을 많이 못 버는 선수도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반응이 많더라”며 “애초에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주변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기분 좋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올라올 후배들에게 나눔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이유호는 “든든한 마음을 얻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투어에 처음 올라오면 자기편이 많지 않을 수밖에 없는데 작게나마 좋은 에너지를 나누면 든든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고작 신인이라는 사람이 누굴 도와줄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도움의 크기가 크든, 작든 역시 시작이 반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끝난 신한동해오픈에서 이유호는 나흘간 버디 12개를 기록했다. 올 시즌 평균 303야드 장타를 뽐내는 그는 24일 개막하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더 많은 버디와 시즌 첫 톱10 진입을 노린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송영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