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을 항해 중인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다가 실종된 40대 남성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확산하는 가운데, 군 당국이 사건을 대략적으로 인지한 22일 오후 3시30분부터 군사적 대응은 물론 정부 차원의 대응도 이뤄지지 않아 야권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헌법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의 자격이 없다”며 소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우리 국민이 총살 당하고 시신이 훼손된 시각에 우리 군이 지켜보기만 했다는 사실은 군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고 지적한 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관련된 지휘관은 전원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전 의원은 이어 “우리 군이 이렇게 된 것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통수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면서 “서해에서 북한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유린한 직후 대통령은 유엔연설에서 종전선언을 말했고, 대면보고를 받은 직후에도 군 진급 신고식에서는 평화를 얘기했다”고 날을 세웠다.
아울러 유 전 의원은 “북한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짓밟아도 문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종전선언과 평화라는 말 뿐”이라고 쏘아붙인 뒤 “청와대가 이 사건의 첩보를 입수한 지 43시간만에 대통령의 유감표명과 ‘용납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건 뒤늦게 국민의 눈치를 보고 립서비스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유 전 의원은 또한 “지금은 문 대통령이 한가하게 종전선언이나 평화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참사에 대해 북한을 응징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비판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덧붙여 유 전 의원은 “북한 눈치를 살피고 아부하느라 자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물은 뒤 “대통령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적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느냐”고 맹공했다. 그는 지난 24일 “내나라 국민이 총살을 당하고 시신이 불태워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사건에 대해 긴급대책을 논의하는 9월 23일 01시 청와대 안보실장 주관 긴급회의에 대통령은 불참하고 관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의원은 “세월호 7시간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고 간 사람들이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유기를 무슨 말로 궤변을 늘어놓을까”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박왕자씨 피살사건 때는 금강산 관광 중단을 했고 천안함 장병 피살사건 때는 5.24 대북 봉쇄조치를 했다”고 적었다.
이어 “문대통령은 이번에 무슨 대북 조치를 하는지 우리 한번 지켜보자”며 “참 어이없는 대통령”이라고 일갈했다.
원희룡 지사도 비판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페이스북과 국민의힘 시·도지사 조찬 간담회를 통해 연일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했다.
앞서 페이스북에서는 ‘국민은 대한민국 정부와 군의 존재이유를 묻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린 뒤 “어느 나라가 비무장 외국인을 사살해서 시신까지 불태우느냐”며 “전쟁 중에도 비무장 민간인은 죽일 수 없도록 한 제네바 협약 위반이다. 현 정부에서 체결된 4·27 판문점 정상회담 공동선언, 9·19 군사 분야 부속 합의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대처도 있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군 당국이 사건을 포착한 것이 22일 밤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다음날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이야기했다. 국민의 처참한 죽음 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설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맹폭했다.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광역지자체장 조찬 간담회에서도 다시 한 번 문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 처참한 죽음을 바라만 보고 북한 입장을 변명해 줄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도대체 어느 나라의 대통령과 군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면서 북한 변명 하는 것에만 급급한 언행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문 대통령과 군은 이번 일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강력히 응징할 것을 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북한의 공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문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원 지사와 같은 광역지자체장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국민이 분노와 슬픔에 잠겨 있는데 한가로이 아카펠라 공연을 즐기는 모습에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는지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도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구출 지시를 안내렸다”며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무능 무책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고 더 이상 말로만 비판 말고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만큼 외교적 행동을 취해 북한이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오늘 스스로 이사태 진실에 대해 티끌만큼의 숨김없이 소상히 국민께 밝혀야할 것”이라며 “20일부터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초 단위로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이 또다시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당력을 총동원해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는 실종 공무원 A씨가 북한 상부지시로 총격을 받았고, 북한 측이 시신을 해상에서 불에 태운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면서 A씨가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지도선이 이탈할 때 본인 슬리퍼를 유기한 점, 소형 부유물을 유기한 점, 월북 의사를 표기한 점 등을 고려해 월북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다만 군은 월북 의사 표기의 출처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군은 북한에 공식 항의했지만 북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군은 지난 23일 오후 4시35분쯤 유엔사측과 협의 하에 북측에 대북 전통문을 발송해 실종 사실을 통보하고 이와 관련된 사실을 조속히 통보해 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이날 NSC 상임위원회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가 총격 및 시신 훼손을 인지한 시점은 22일 오후 10시30분경이라고 밝혔다.
서 사무처장은 “오후 10시 30분 첩보를 입수하고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시점에 대해서는 “23일 오전 8시30분경 대면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다만, 공무원 실종이 문 대통령에게 처음 서면 보고된 것은 22일 오후 6시30분이며, 총격 등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