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 국민의힘 회의실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배경의 백드롭(뒷걸개)이 파격 등장했다.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요, 집값’이라는 문구에 출처는 ‘더불어민주당’으로 표시했다. 당시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토론 방송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발언해 도마에 오른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바뀐 백드롭에는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과거 이해찬 대표 시절 사용된 ‘전진’ ‘승리’ 등 투쟁적인 언어가 이처럼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뀐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곧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 합의하며 협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여야가 4990X2540㎝ 규격의 ‘백드롭’을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백드롭은 각 당 회의실 뒤에 걸어놓는 한 줄 또는 한 문장의 글이 담긴 걸개를 말한다. 백드롭은 각 당 지도부 회의를 취재한 사진과 영상에 담겨 국민에게 직접 전달된다. 따라서 여야는 국민의 생각을 바꿀 날카로운 한 문장, 각 당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국민에게 호소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만 34살의 김수민 홍보본부장을 임명해 세련되고 감각적인 ‘백드롭 정치’에 날개를 달았다. 21대 국회부터 ‘원내투쟁’을 강조해온 국민의힘은 현안에 따라 백드롭 문구를 수시로 바꾸며 파격적인 디자인도 감수했다. 백드롭을 통해 정부·여당의 실책을 지적하고 대안정당으로 거듭나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온 것이다.
지난 28일 국민의힘은 ‘대통령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문구를 백드롭에 내걸며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을 정조준했다. 공무원 이씨가 사망한 원인을 대통령의 대응 실패로 돌리며 ‘리더십 실종’을 부각한 것이다. 또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논란이 불거진 지난 24일에는 ‘정치공세 OFF 위기극복 ON’이라는 백드롭을 세웠다. 여당의 ‘코로나19 재확산 책임론’에 맞서는 동시에 감염병 방역을 위한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아이폰의 잠금 화면을 차용한 디자인으로 직관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젊고 신선한 분위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호남 피해복구에 나설 때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5·18 무릎 사죄를 할 때는 ‘역사의 매듭을 풀다’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셀프 홍보에 나섰다.
민주당 백드롭에서 보이는 두드러지는 변화는 대결정치에서 협치로의 전환이다. 이해찬 대표 시절 민주당은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를 주로 사용했다. ‘코로나전쟁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코로나전쟁 승리 경제위기 돌파’ 등이 그것이었다. 특히 이 두 문구가 사용된 백드롭에는 ‘코로나’가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의 당색인 핑크색으로 채색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제1야당에 ‘코로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이 대표가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바뀐 백드롭에는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 라는 문장이 새겨지면서 협치를 예고한 바 있다.
백드롭을 잘못 디자인해서 ‘뒷말’이 나온 사례도 있었다. 국민의당은 지난 17일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 휴가 특혜 의혹 논란이 불거진 당시 ‘현 병장(추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을 폭로한 당직사병)은 우리의 아들이다’ 이라는 문장과 함께 군인의 형상을 백드롭에 같이 담았다. 그런데 이 군인이 들고 있는 총기의 모양이 북한에서 사용하는 AK47의 형상으로 나타나자 “어느 나랴 군대냐”는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현씨가 백드롭에 대한 개인적인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의당은 끝내 백드롭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김인엽·김혜린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