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업규제 3법 강행하면 아예 사업 포기하는 경영자 속출할 것” [청론직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본래 기업 지원하는 상법, 시장통제와 길들이기 수단 전락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해외투기펀드에 먹잇감 내주는 꼴

민간 주도로 국가개입 제어가 경제민주화...거꾸로 가는 중

경영권 방어장치 제공해야...‘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필요

정부·여당이 올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밀어붙이면서 거센 논란을 빚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코로나19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3법 추진은 국내 기업들을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꼴”이라며 “규제 3법이 강행되면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경영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교수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상법이 시장과 기업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민간 주도의 경제민주화가 도입 취지와 달리 이 정부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상법을 비롯한 ‘기업 규제 3법’을 밀어붙여 기업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


△상법은 원래 규제법이 아니라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안정적인 상거래를 뒷받침하고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허용해주는 법이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들은 모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우리는 툭하면 기업을 옥죄고 규제하는 법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정부가 이 법을 기업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기본적 인식이 크게 잘못됐다.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이번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우선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자회사의 주주가 원하지 않더라도 모회사의 주주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해관계가 충돌할뿐더러 경영 활동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다. 말로는 소액주주를 보호한다지만 실제로는 투기펀드가 경영권을 압박해 단기차익을 노리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설령 이를 도입하더라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한 ‘완전 모자회사’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역시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는데.

△세계 어디에도 경영자를 뽑는데 주주권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이러면 해외 투기펀드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국내 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가령 청와대 비서진 가운데 한 명이라도 야당 의원이 들어가는 사태를 용납할 수 있겠나. 내부 분열을 유도하고 정부 비밀을 빼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헤지펀드 엘리엇이 우리 기업 사정을 손바닥 보듯이 들여본다면 경영기밀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소수주주권 행사도 마찬가지다. 상법 개정안에는 1~3%의 지분만 있으면 보유 기간에 상관없이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의도적으로 특정 기업을 괴롭히기 위해 주식을 취득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3법 추진은 국내 기업들을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꼴”이라며 “규제 3법이 강행되면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경영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형주기자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3법 추진은 국내 기업들을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꼴”이라며 “규제 3법이 강행되면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경영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형주기자



-경영계는 규제 3법을 시행하더라도 최소한 시기를 늦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까지 겹쳐 경제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지금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다시 불러와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다간 아예 경영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해외 진출 기업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자본력이 튼튼한 대기업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중견·중소기업은 해외 투기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중기업들은 지분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특정 세력이 조금만 흔들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된 전속고발권 폐지도 논란을 빚고 있는데.

△ 문제는 시민단체 등이 대기업을 공격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한다면 그 기업이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다는 사실이다. 검찰의 수사 착수만으로도 주가가 폭락하고 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남용 여지가 크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 가령 공정거래위원회와 수사기관이 협의체를 만들어 수사 여부를 심사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수 있다. 그런 보완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도입해선 안 된다.

-법무부에서는 집단소송 대상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집단소송이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남용 문제가 심각하다. 소송 제기만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기업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는 우리의 기본 소송 구조와도 맞지 않다. 증권 집단소송의 사례처럼 우리 실정에 맞지 않아 외면받고 있는 제도를 무작정 풀겠다니 걱정스럽다. 만약 시행에 들어간다면 기업 경영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제도다. 앞으로 법안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되 아무 대책도 없이 풀어주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정부 안에 찬성하고 있는데.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란 민간 주도형 경제를 통해 국가권력이 시장 경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정치적 민주화에 발맞춰 경제적으로도 관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해야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경제민주화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가들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이 절실하다. 과감히 민간 자율에 맡기고 규제를 더 많이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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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어느 기업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시도되면 그간 기업에 헌신해온 사주나 경영주가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경영권을 방어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단지 재산권을 보장해준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부당한 경영권 침탈에 맞서 경영을 계속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창업자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포이즌필이나 일부 주식에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을 특별히 운영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처럼 경영권을 합리적 선에서 방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우리는 기업들을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있는 셈이다.

-평소 ‘경영 판단의 원칙’을 강조해왔는데.

△경영자가 안심하고 적극적인 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경영 판단의 원칙이다.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기업에 손해가 발생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불법을 저지른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마련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 기업이 망하면 당장 경영자를 대상으로 배임죄를 따지고 감옥에 보내기도 한다. 우리도 독일처럼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상법에 담아야 한다.

-우리는 배임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고 비판받는데.

△한국에서 기업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바로 배임죄다. 기준이 모호한데다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 문제다. 이렇게 되면 적극적 경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글로벌 시대에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적극적인 경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극적인 경영에 머무르고 안전한 길을 찾는 기업은 망하게 마련이다. 만약 배임죄로 처벌하려면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적극적인 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그런 대안을 제시하면서 균형 있는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검사 출신으로서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에도 관심이 많을 텐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말 그대로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만 다루는 조직이다. 그런데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다루는 조직이 진정 독립적이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중립적 기관을 만들려면 여당 마음대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공직자 부패범죄 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한 핵심 요건은 바로 중립성 확보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법을 바꿔 여당 주장대로만 공수처를 운영한다면 독재로 가는 것이다.

-공수처법에 담긴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공수처법에서는 판사와 검사 같은 중요한 사법기관을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재판하고 있는 판사와 수사하고 있는 검사를 직권남용죄로 걸 수 있다는 얘기다.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되겠나.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확 줄이고 검찰에서 인지만 해도 공수처에 보고하라는 것도 문제다. 중요한 부패범죄를 덮어버리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에 법원과 경찰까지도 공수처법에 반대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검찰의 수사 전문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외국에선 부패범죄만 전담하는 별도의 수사기구를 두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신 영국에서는 특별검찰청 같은 기구를 만들어 전문범죄나 비즈니스 범죄, 자금세탁 등 신종 범죄를 다루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수사 능력을 갖춘 독립적 기구를 만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검찰 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했다. 세계적 추세와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1957년 제주에서 태어나 경희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동부지검·광주지검 검사와 전주지검 군산지청·광주고검 부장검사 등을 거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실장을 지냈다. 2007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됐으며 현재 한국상사법학회 부회장· 한국기업법학회 부회장·한국증권법학회 부회장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즈니스범죄와 기업법’ ‘주식회사법대계’ ‘주석 외부감사법’ 등이 있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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