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민들이 철거 위기에 몰린 ‘평화의 소녀상’에 회생의 희망을 부여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쟁 피해 여성의 보편적 가치임을 상기시켜 베를린시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전격 철회를 이끌어낸 것이다.
베를린 미테구청은 13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미테구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면서 “내일인 철거 시한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미테구는 지난해 7월 소녀상의 설치를 허가했지만 지난달 제막식 이후 일본의 반발이 거세지자 14일까지 철거할 것을 소녀상 설치 주관 단체인 코리아협의회에 요구한 바 있다.
미테구는 소녀상과 관련해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은 “우리는 복잡한 논쟁의 모든 당사자 입장과 우리의 입장을 철저히 따지는 데 시간을 사용할 것”이라며 “코리아협의회와 일본 측 간의 이익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념물을 설계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미테구는 시간과 장소·이유를 불문하고 무력충돌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성폭력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미테구청의 입장 변화는 현지 시민단체들과 시민들이 소녀상 철거에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베를린 시민과 교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쟁 피해 여성 문제라는 보편적 가치임을 내세웠고 코리아협의회는 40여개 현지 시민단체와 연대에 나섰다. 13일에는 현지인과 교민 등 300여명이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집회를 가졌고 온라인 청원에서 수천 명이 참여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소녀상 철거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
베를린 소녀상의 운명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비문을 수정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테구가 비문의 내용을 문제 삼은 만큼 비문에서 국제적인 보편성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