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70> 脫사회주의 대표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 모범으로?…‘習의 상징도시’된 선전

■선전 경제특구 40년의 明·暗

중국 광동성 선전시의 현재 모습. 지난 9월11일 촬영된 사진이다. /신화연합뉴스중국 광동성 선전시의 현재 모습. 지난 9월11일 촬영된 사진이다. /신화연합뉴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권력을 탈환한 덩샤오핑이 1977년 11월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에 나타났다. 이른바 경제분야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현황 파악을 위한 남부지방 시찰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1992년 이른바 ‘남순강화’의 훨씬 이전부터 덩샤오핑은 자주 지역을 방문해 목소리를 내왔다.

새로운 권력자에게 광둥성 정부가 현안들을 제출했는 데 그중에서 선전 주민들의 홍콩으로의 불법 도강 문제가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이었던 선전은 홍콩 신계지역과 ‘선전하’라는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빈곤에 찌든 중국인들이 선전하를 건너 당시에도 선진지역이었던 홍콩으로 달아난다는 것이다.


중국측 공식문서로 기록된 것만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978년까지 6만여명이 강을 건너 홍콩으로 이주했다. 이외에 아예 기록되지 않거나 도강 중에 사망한 사람은 더 많았다. 이는 단순히 국경경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전하의 이쪽과 저쪽 주민들의 당시 평균 소득은 백배 이상 차이가 났다고 한다.

이런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선전의 개방 논의가 시작됐다.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 한국의 수출자유지역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경제건설에 나서자는 주장이 나왔다. 남부지방의 많은 지역 가운데 선전이 특히 주목받은 것은 홍콩과 인접해 홍콩 자본을 이용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선전은 마침내 1980년 8월 ‘경제특구(經濟特區)’로 지정됐다. 당시 광둥성 공산당 위원회 제2서기였던 시중쉰(현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친)의 적극적인 추진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덩샤오핑의 후원을 얻어 보수파들의 반대도 넘어섰다.

이후 선전이 성장하는 데는 기타 다른 지역은 얻을 수 없었던 수많은 특혜가 바탕이 됐다. 지역정부의 자율성이 확대됐고 기업에는 낮은 세금이 매겨졌다. 보수파들로부터 “선전이 사회주의를 파괴할 것”이라는 불만이 나온 데 대해 덩샤오핑은 “넓은 중국에 이런 지역이 하나쯤 있어도 된다”고 대꾸했다고 한다.

당초 수출가공무역구 등으로 불렸던 이름을 ‘경제특구’로 확정한 것은 덩샤오핑이다. 그는 시중쉰의 건의를 받고 “특구가 좋다. 산시·간쑤(공산당 근거지)도 시작할 때 ‘특구’라고 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즉 ‘특구’는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의미 있는 이름이어서 보수파도 반발할 명분이 작었다.

흥미로운 점은 선전의 특구 논의가 1970년대 말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불법 도강 이주 문제는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선전과 홍콩간의 국경이 폐쇄된 이후 계속됐고 극좌운동인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더했다. 특히 큰 이주가 1957년, 1962년, 1972년, 1978년에 일어났다고 한다.

선전에 특수구역을 설치하자는 논의는 앞서 1962년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기자에 의해 정리돼 보고서로 공산당 지도부에 전달된 적이 있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논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본주의적 발상은 당시의 사회주의 광풍에 간단히 묻혀버렸다. 만약 그 때 개혁이 성공했으면 선전 경제특구는 조만간 60주년을 맞이하게 됐을 것이다. 중화민국 정부가 계속 중국을 통치하고 있었다면 특구 자체가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지난 1983년 10월 선전의 모습이다.‘경제특구’가 지정되고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건물들이 잇따라 세워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지난 1983년 10월 선전의 모습이다.‘경제특구’가 지정되고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건물들이 잇따라 세워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선전 경제특구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어쨌든 중국 정부의 권한 이양과 선전 주민들의 각고의 노력, 그리고 홍콩 등 해외자본의 도움으로 선전 경제는 급속히 발전을 했다. 앞서 경제특구 이전의 30년을 만회하려는 듯이 말이다.

경제특구 지정 전만 해도 인구가 3만명이 채 안됐던 선전시는 40년 만에 인구 1,300여만명의 거대도시로 도약했다. 이 도시에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중국 최대 정보기술( IT)업체인 텐센트, 세계 최대 드론 제조업체인 DJI, 전기차 업체 BYD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말 그대로 중국의 ‘첨단기술과 혁신의 허브’로 작동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선전시의 국내총생산(GDP)은 3,900억달러(약 440조원)로, 인근 대도시인 광저우와 주하이의 GDP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선전의 GDP는 이미 2018년에 홍콩을 넘어섰다. 홍콩으로의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해 애쓰던 지역이 이제 홍콩보다 더 큰 도시가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2월 ‘웨강아오 대만구’(Great Bay Area)‘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웨강아오 대만구는 선전시를 비롯한 광둥성내 9개 주요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통틀어 지칭한다. 사실상 최대도시인 선전을 중심으로 중국 남부의 주강 삼각주 지역을 재편하려는 작업의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선전이 자본주의 지역인 홍콩과 마카오를 끌어들이는 거대한 실험을 하게 된 셈이다. 현재 웨강아오 대만구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7,000만명으로 이곳의 총 GDP는 1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14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선전 경제특구 40주년 기념식’을 방문해 중국경제에서 선전이 가지는 의미를 부각 시켰다. 시 주석은 이날 기념식 연설에서 선전이 “중국 인민이 창조한 세계 발전사의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시 주석은 선전 경제특구가 중국에 10가지 귀중한 경험 선사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그는 “선전은 경제특구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 제도를 견지했으며 중국 발전을 위한 확실한 법칙을 따라 왔다”면서 “전방위적 대외 개방과 혁신, 엄격한 법 집행, 경제 개발과 환경의 전면적인 조화, 일국양제(한나라 두제도)의 관철 등도 선전 경제특구를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정부는 선전을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先行)시범구’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통제 등을 적당히 배합한 중국식 성장모델의 모범도시로 선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아버지(시중쉰)이 이룬 사업을 아들(시진핑)이 이어 받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시진핑이 이날 주장한 “새로운 정세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며 “개혁과 개방을 멈추지 말고, 더 높은 수준의 개혁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은 선전만 두고 볼 때는 다소 어색한 점이 있다.

선전 육성 정책은 기존 ‘경제특구’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시범구’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시범구는 말 그대로 중국특색사회주의의 모범도시라는 의미다. 중국식 사회주의도 이런 거대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셈이다. 다만 이러한 이름이 외국자본가를 포함한 해외에 어떻게 미칠지는 의문이다.

과거 덩샤오핑은 자국인들에게는 사회주의 유산을 지킨다고 믿게 만들면서도 외국인들에게 보다 익숙한 이름인 ‘경제특구’를 채택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오히려 중국식 사회주의 사상에 익숙한 자국인들 입맛에 맞출 뿐 외국인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시범구’를 고집하고 있다. 시진핑이 덩샤오핑과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구가주석이 지난 14일 선전 경제특구 40주년 전시회장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화연합뉴스시진핑 중국 구가주석이 지난 14일 선전 경제특구 40주년 전시회장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선전은 미중 갈등과정에서도 첨예한 무대가 되고 있다. 미국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제재에 들어간 기업의 대부분이 선전에 본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18년부터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들어갔다. 화웨이는 선전에서 세워졌고 지금도 본사를 선전에 두고 있다. 이어 미국은 ZTE· DJI·텐센트 등 선전 소재 기업들을 잇따라 공격하고 있다.

미국이 이들 기업을 제재하는 명분은 “중국 공산당의 조종을 받아 미국의 국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선전이 중국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상대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것이 중국 관영매체의 자랑인데 오히려 외부에서는 이들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처럼 여겨진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중국정부의 적극 지원으로 선전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지난 14일 연설에서 “홍콩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중국 본토로 넘어와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40여년전 선전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홍콩으로 불법 이주한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최근 선전은 잇따라 뉴스 중심에 서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새로 만들고 있는 법정 디지털화폐 ‘디지털 위안화’의 공개실험을 지난 12~18일 선전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알리페이 등 전자결제에서 가장 앞서 있는 도시인 선전이 디지털화폐도 더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발 더 나가 18일 국무원 직속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선전 시정부에게 인공지능(AI)·빅데이터·드론 등 첨단기술 분야 자체 조례를 만들 자율권을 갖고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비자 제한을 완화할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40개의 추가 특혜를 제공했다.

중국은 오는 26일부터 베이징에서 2021∼2025년의 14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과 2035년까지의 장기목표 등을 논의할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선전 모델’은 중심 주제가 될 전망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과거 개혁개방 40년 동안에 선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도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을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런 선전 성장 과정에서 오히려 배제되고 있는 홍콩인들의 불만도 주목를 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선전이 경제성장률 달성에만 몰두하면서 학교시설 확보는 무시되고 있다”며 사회·교육 인프라의 낙후를 꼬집는 르포 기사를 게재했다. 2인자로 물러섰지만 과거를 잊지 못하는 옛 1인자의 주장인데 나름대로 새 1인자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는 평가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최수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