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달하는 독감백신을 접종한 후 사망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최소 11건 발생하면서 ‘독감백신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잇단 접종 후 사망에 국민들은 접종을 해야 할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만 정작 질병당국은 “백신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없다”며 국가예방접종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일부에서는 독감백신 거부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1일 진행된 독감백신 관련 긴급 브리핑에서 “보고된 사망사례 9건 중 7건에 대해 역학조사와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특히 고령 어르신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임신부들은 인플루엔자에 감염됐을 때 합병증이 우려되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꼭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21일 질병 당국이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독감백신 사망사고’ 9건의 사례에서 유의미한 공통점은 많지 않다. 우선 사망자 중 6명은 60대 이상 고령자지만 1명은 17세 청소년이다. 가장 먼저 사망한 17세 청소년은 백신 일부 물량을 상온에 노출시켜 물의를 일으킨 신성약품이 유통한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실제 맞은 독감백신은 상온에 노출된 백신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들이 접종한 백신도 다양하다. 사망자 중 3명은 보령바이오파마의 백신을 맞았고 2명은 GC녹십자, 2명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을 접종했다. 1명은 LG화학, 1명은 한국백신의 백신을 맞았다.
공통점이 없는 연이은 사망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 질병청은 사망자 중 1건의 사례에서 ‘아나필락시스 증후군’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질병청은 “정확히 의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시간관계상, 시간의 연계상 급성기 과민반응과의 관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나필락시스 증후군은 항원·항체 면역 반응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급격한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백신의 중증 부작용 중 하나다. 지난 2016~2017년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의대 교수는 “아나필락시스 증후군은 혈액으로 증상 발현 여부를 확인하는데 사망 이후 발견된 사례이기 때문에 부검에서 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며 “청소년을 제외한 나머지 사례에서 아나필락시스 증후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김경우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백신을 접종하고 나서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생긴 사례 13건이 보고됐다”며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부검에서 밝혀지지 않고 애매한 경우도 있어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백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질병청은 “동일한 백신을 접종한 다른 분들이 별다른 문제 없이 괜찮았다고 하는 반응을 봐서는 이 백신이 독성 물질을 갖고 있다는 현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독감백신의 주요 부작용은 발열·근육통·감염 정도다. 전문가들도 독감백신은 ‘사백신(죽은 백신)’이기 때문에 최근 발생한 상온노출 사고처럼 적정온도를 유지하지 못했을 경우 단백질 변성으로 약효가 없어지는 ‘물백신’이 될 수는 있지만 백신 때문에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질병청은 국가예방접종을 지속할 방침이다.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예방접종피해보상전문위원회 위원장인 김준곤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사항에 따르면 고령자·임산부·기저질환자·소아·의료종사자들은 반드시 예방접종을 실시하도록 강력히 권하고 있다”며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인플루엔자가 동시에 유행하는 것에 대해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지속하는 게 타당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연이은 사고로 시민들 사이에서는 백신 접종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유독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는 만큼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방역당국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라며 “공포는 무엇보다 빨리 퍼지는 만큼 방역당국은 빠르고 투명한 정보공개 원칙에 따라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우 교수는 “만약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사망이라면 이는 특이체질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본인과 의료기관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혜·이주원·우영탁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