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시행을 앞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시행령 제정안을 두고 금융사들이 술렁이고 있다. 이대로 입법되면 소비자들은 앞으로 주가연계증권(ELS)·사모펀드 같은 투자상품도 가입했다가 마음이 바뀌면 특별한 이유 없이 일주일 내 청약을 철회할 수 있고 금융사들이 판매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상품을 팔면 전체 판매액의 절반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금융사들은 소비자보호 강화라는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현행 규제를 모두 지키는 동시에 갈수록 커지는 간접투자 수요에 제때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판매사들에 ‘무한책임’이 지워질수록 적시에 다양한 상품을 내놓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저금리 시대 고수익에 목마른 유동자금이 부동산·주식시장으로 쏠리는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전날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금소법 시행령에 대해 현업 부서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금융위는 수개월간 각 협회 및 금융사의 준법감시·지원부서를 중심으로 시행령 작업을 협의해왔지만 현업에서는 시행령상 규정이나 기준이 모호하고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 금융지주의 자산관리(WM) 부문 고위관계자는 “협의가 충분히 이뤄졌다지만 입법예고가 될 때까지도 시행령 전문을 보지 못했다”며 “입법의견을 제출하더라도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위기여서 촉박한 시일 내에 할 수 있는 한 내규를 정비하고 현장의 혼란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이번에 새로 도입되는 징벌적 과징금의 부과 기준이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금융사들이 금소법을 위반하면 보험료나 대출액·투자액·예치금을 기준으로 최대 50%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가령 은행이 투자상품을 1,000억원어치 팔면 불완전판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판매수수료로 약 10억원(1% 안팎)을 번 은행에 최대 500억원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상위법인 금소법에서는 부과 기준을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 문구나 통상적인 기대에 비하면 다소 과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현재 유사한 취지로 발의된 법안 가운데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경우 ‘위반행위와 관련해 얻은 수입의 절반 이하 또는 소비자에게 끼친 손해액의 3배’를 과징금 부과 상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A은행의 한 관계자는 “투자·대출·보험 등 모든 상품의 판매가 위축되고 소비자 가입도 제한될 수 있어 오히려 소비자보호라는 취지에 역행하는 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상품에 대한 청약철회권도 쟁점이다. 특별한 사정 없이 7~15일 이내에 가입 후 청약을 철회할 수 있는 이 권리의 적용 대상에 투자성 상품도 포함되면서다. 시장 변동에 따라 설정 후 단기간에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될 수 있는 특성상 투자상품은 더 제한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고난도펀드·신탁 등도 대상에 들어갔다. 물론 증권 거래·리스 계약처럼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투자자가 ‘지체 없이 운용해도 된다’고 동의한 경우에는 예외가 적용되지만 현실적으로 활용성은 떨어진다는 게 현장의 의견이다.
B금융지주의 WM부문 관계자는 “즉시 투자를 원해서 온 고객도 일단 숙려기간을 갖길 원할 가능성이 높고 전문성을 가진 직원이라도 향후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즉시 설정을 권하기 쉽지 않다”며 “결국 간접투자 시장이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은행의 관계자는 “은행이 판매하는 투자상품은 결국 운용사가 만든 상품을 소싱한 게 대부분인데 설명의무는 판매사에 과도하게 지우고 있다”며 “오히려 제조사-판매사 간, 판매사-소비자 간 분쟁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