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정농담] 韓을 향해 끝없이 소리쳐 부르는 유승준의 입국노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90년대 '아름다운 청년'에서 美국적 선택해 몰락

지난해 대법 승소로 기사회생했지만 반전에 반전

병무청장 "유승준이 아니라 스티브 유로 불러야"

강경화, 국감서 "비자 발급 안할 것" 논란 종지부

"인권침해" 호소에도 여론 '싸늘'...공론화 쉽잖아

유승준씨. /사진제공= 아프리카TV 방송 화면 캡쳐유승준씨. /사진제공= 아프리카TV 방송 화면 캡쳐



1990년대를 풍미한 남성 솔로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44)씨에 대한 입국 허용 논란이 각 부처 국회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화두로 떠오르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법원 판결로 18년 만에 입국 길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병무청은 여전히 입국 금지 유지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후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며 희망의 불씨를 지폈으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앞으로도 비자 발급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논란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유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강 장관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외교부는 더 이상의 논의는 하지 않을 것처럼 선을 그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만 “논의를 해 보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유씨가 병역 의무를 피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유씨의 입국에 관해서는 이례적으로 좌·우 모두의 여론이 극도로 부정적인 분위기다. 당분간 유씨 입국 논란이 곧바로 공론화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2001년 8월7일 유승준씨가 대구지방병무청에서 징병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2001년 8월7일 유승준씨가 대구지방병무청에서 징병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아름다운 청년’에서 ‘공공의 적’으로 몰락한 톱스타


유씨는 1990년대 말 가요계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남성 솔로 댄스가수였다. 유씨는 1997년 1집의 ‘가위’로 데뷔해 몇 달 만에 유명세를 탄 뒤 1998년 발표한 2집의 ‘나나나’가 크게 히트해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유씨는 방송 등에서 “군대에 가겠다”고 수차례 밝히며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당시 그의 이미지는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으면서도 내면은 올곧은, 그야말로 청소년들의 귀감이 될 만한 스타였다.

유씨가 한 순간에 무너진 건 2002년 1월 돌연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선택하면서부터였다. 그간의 공언과 달리 유씨가 병역 면제의 길을 선택하자 배신감을 느낀 국민들은 곳곳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공분이 잦아들지 않자 병무청으로부터 입국 금지 요청을 받은 법무부는 유씨가 출입국관리법 상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한국 입국을 제한했다. 유씨를 ‘경제·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외국인’으로 분류한 것이다. 유씨는 당시 미국 국적을 취득한 뒤 그해 2월 미국인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오려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후 중국 등에서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던 유씨는 2015년 9월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1·2심은 “유씨가 입국해 방송 활동을 하면 자신을 희생하며 병역에 종사하는 국군 장병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 사이에 병역 기피 풍조가 만연해질 우려가 있다”며 유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때만 해도 유씨의 입국 가능성은 여전히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고, 대중들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

유씨가 한국 재입성에 다시 자신감을 갖게 된 건 지난해 대법원 판결부터였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법무부 장관의 입국금지결정을 재외공관장이 따랐다고 해서 사증발급 거부처분의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씨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사증(비자)발급 거부 처분은 영사관의 재량행위인데 이를 전혀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위법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또 공식적으로 사증발급 거부처분서를 작성하지 않고 전화로 유씨 아버지에게 처분 결과를 통보한 것도 행정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국금지 결정이나 사증발급 거부처분이 적법한지는 실정법과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도덕적 문제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같은 해 11월15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유씨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유씨의 두 번째 2심에서 “사증발급 거부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LA총영사관은 즉각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은 기존 취지대로 파기환송심 결과를 그대로 확정했다.

법조계나 외교가에서는 유씨가 18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 건 이제 시간 문제라고 봤다. 유씨의 나이가 병역의무가 해제된 38세가 지난 만큼 LA 총영사관이 재외동포 비자 발급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입국 논란에서 확실한 명분을 쥔 건 이제 유씨처럼 보였다.

모종화 병무청장. /연합뉴스모종화 병무청장. /연합뉴스


‘입장불변’ 병무청 “유승준이 아니라 스티브 유”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완고했다. 사증 발급은 행정청의 재량행위에 속하므로 재외동포 체류 자격의 신청 요건을 갖췄다고 무조건 사증을 발급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유씨는 법원 승소에도 LA 총영사가 비자 발급을 거부하자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에 재차 사증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군과 행정부의 변하지 않은 입장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모종화 병무청장은 13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아예 “호칭을 유승준이 아닌 스티브 유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 청장은 “유승준씨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스티브 유씨는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 군대에 가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약속을 했는데 돌연 미국으로 출국한 뒤 미국 시민권을 받아 미국인이 되면서 병역을 면탈하고 국민적 공분을 샀다”고 설명했다.

“유씨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모 청장은 “스티브 유씨에 대한 입국금지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유씨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가 풀린다면 지금 이 순간 성실히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우리의 장병들이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 청장은 28일에도 같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채익 의원의 관련 서면질의에 “스티브 유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공인으로서 계획적으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이라며 “일반 국민의 상실감, 병역기피 풍조, 사회질서를 해할 우려 등에 비춰 공인의 계획적인 병역의무 기피를 일반적인 국적 변경자와 동일한 시각으로 보는 건 곤란하다”고 답했다. 이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스티브 유의 병역 기피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고 공정 병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연합뉴스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강경화 “비자 발급 안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도 입장 번복


이런 상황에서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병무청과는 상반된 의견을 제시해 유씨가 다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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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사장은 지난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재외동포재단 대상 국정감사에서 “한 이사장과 유씨는 같은 재외동포 신분인데 유씨의 입국과 관련해 어떤 입장이냐”고 묻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질의에 “유씨는 미국 국적자인 재외동포이고, 나는 재외국민인 재외동포로 법적 지위는 다르다”면서도 “우리나라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입국을 허락했으면 유씨의 입국은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이사장은 “나의 경우 가족 해외 이민으로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됐지만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해 병역 의무를 다했다”며 “유씨의 경험과 반대되는 것이라 독특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강 장관은 일주일 뒤인 26일 국회 외통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유씨 관련 질의에 “관련 규정을 검토한 후 다시 비자발급을 혀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유씨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입국 비자를 발급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론이었다.

강 장관은 “대법원은 외교부가 제대로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판시한 것”이라며 “(유씨를) 입국시키라는 게 아니라 절차적인 요건을 갖춰라(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강 장관 발언에 옆에 있던 한 이사장도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내 의견과 장관의 지휘 방침이 다르면 내 의견은 의미가 없다”고 해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장관님, 저 아세요? 병역법 어기지 않았습니다”

한 줄기 희망을 품었던 유씨는 강 장관의 단호한 입장에 즉각 반발했다. 그는 지난 27일 자신의 SNS에 “외교부 장관님 가수 유승준입니다. 저를 아시는지요”로 시작하는 장문의 호소 글을 올렸다.

유씨는 “2002년 2월 한순간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며 “미국 시민권을 선택한 대가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병역기피자라는 낙인과 함께 무기한 입국금지 대상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씨는 또 “군에 입대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적어도 나는 병역법을 어기지는 않았고 내가 내린 결정은 합법적”이라고 강조했다. 유씨는 그러면서 “저는 한국 연예계를 떠난 지 19년이 다 되어 간다”며 “그냥 떠난 정도가 아니라 지난 19년간 온갖 말도 안 되는 거짓 기사들과 오보들로 오명을 받아 왔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하여 입국금지를 당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영구히 입국 금지라는 게 맞는 처사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뒤 “저는 이것이 엄연한 인권침해이며 형평성에 어긋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장관님께서 부디 저의 무기한 입국금지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민해 주시고, 이제는 저의 입국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제공=유승준씨 인스타그램 캡처/사진제공=유승준씨 인스타그램 캡처


외교부 “개인 입장일 뿐”... 여론조차 ‘싸늘’

그럼에도 외교부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유씨 주장에 대한 외교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해당 신청인이 개인적으로 표명한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유씨에게 비자를 발급할 조건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비자 발급은 해당 영사가 제반 상황을 감안해 발급하는 재량 사항”이라며 “비자 신청이 있을 경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비자 발급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론적 답변 외엔 말을 아낀 것이다.

다만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인권위 국정감사에서 “논의를 해 봐야 하는 시점”이라며 “바뀐 상황과 인권위의 기존 결정 등을 고려해 저희가 검토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앞서 지난 2003년 유씨가 입국금지 조치와 관련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낸 진정을 ‘국제법상 국가가 외국인의 입국을 허가할 일반적 의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외국인의 입국허용 여부는 당해 국가 자유재량으로 정할 사안’이라는 취지로 기각한 바 있다.

유씨 논란을 바라보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싸늘했다. 다른 이슈와 달리 유씨 사건 만큼은 진보·친정부 성향의 커뮤니티와 보수·반정부 커뮤니티 간의 온도 차가 크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었다. 병역이라는 주제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이념을 뛰어넘는 예민한 소재라는 방증이다.

유씨의 추가 소송 결과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현 정부 방침과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할 때 그에 대한 입국 허용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유씨에 대한 우호 여론이 조성될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말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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