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은행

방문규 "輸銀도 체질개선… 전통산업 지원서 신재생·미래차로 투자 전환"

■서경이 만난 사람 방문규 수출입은행장

비대면 산업 급부상… 포트폴리오도 시장에 맞춰 변화해야

10년 뒤 수은 여신잔액의 30%, 그린·디지털 뉴딜에 지원

코로나 재확산에 '만기 연장 기업' 부실 가능성 수시감리도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전 세계 코로나19의 확산세에 따른 대비책을 설명하고 있다./성형주기자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전 세계 코로나19의 확산세에 따른 대비책을 설명하고 있다./성형주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시장이 선박·건설 등 산업에서 신재생에너지·자율주행차 등 그린·디지털 뉴딜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한국수출입은행도 포트폴리오를 그린·디지털 뉴딜 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5년간 신규 여신의 연평균 11%를 그린·디지털 뉴딜 산업에 지원할 계획입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에서 만난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산업이 재편됨에 따라 수은도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은은 해외 투자 및 해외 자원개발 등 대외 경제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는 국책은행이다. 기존에는 건설·플랜트·선박 등 중후장대 기업에 주로 금융 지원을 제공해왔다. 코로나19로 이들 기업의 해외 수주가 어려워지고 디지털·비대면 관련 산업이 급부상함에 따라 수은의 포트폴리오도 시장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게 방 행장의 생각이다. 지난 9월 기준 수은이 뉴딜 분야에 지원한 비중은 신규 여신의 8.7%다. 이를 점차 확대해 앞으로 5년간 11%(총 30조원)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에 수은이 집중해온 해운·플랜트는 (업계 특성상)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업종”이라면서 “그린·디지털 뉴딜은 안정적으로 수입이 나오고 대출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분야인 만큼 이미 수은은 이 분야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를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대담=홍준석 금융부장 jshong@sedaily.com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따른 수은의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따른 수은의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방 행장은 장기적으로 2030년에 수은 여신잔액 140조원의 30%를 그린 뉴딜(24%), 디지털 뉴딜(6%) 등에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린·디지털 뉴딜 등 혁신성장산업에 대한 여신 비중은 지난해 각각 17%, 2%에 그쳤다. 건설·플랜트 등 전통 기업이 수은 여신의 대부분(81%)을 차지했다.

방 행장이 수은의 체질개선을 주문하고 있는 데는 코로나19로 기존 전통산업의 수주 실적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건설 분야의 수주 실적은 2017년 290억달러에서 올해 9월 185억달러로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조선업은 173억달러에서 62억달러로 3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해외 수주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수은 역시 이들 기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위기’나 다름없다.

풍력·태양광발전, 5세대(5G), 인공지능(AI) 등 그린·디지털 뉴딜 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이미 시작됐다. 수은은 한화에너지가 추진하는 아일랜드 에너지저장설비(ESS) 프로젝트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 800억원을 제공했다. 미국 현지 연료전지 제조사 운영자금으로 두산퓨얼셀에 2,000억원도 지원했다.

금융 지원은 대기업에만 쏠리지 않았다. 중견기업인 세아제강은 8월 영국에 풍력 기초구조물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의 수주를 따낸 뒤 수은과 현재 대출 지원을 놓고 논의 중이다. 방 행장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도 불안하다”며 “투자도 하고 대출도 지원해주는 식으로 지원을 늘려가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한 방 행장은 이후 1년간 해외 출장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수은 역사상 처음이다. 방 행장은 “처음에는 메르스가 3개월 만에 쏙 들어간 것처럼 코로나19 사태도 최대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백신·치료제 개발이 늦어지고 유럽·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추세를 보면 내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까지 수은에서 집행한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은 총 48조6,000억원에 이른다. 기존 대출금의 만기연장에 13조2,000억원, 수출입 여신 지원에 34조1,000억원, 두산중공업·대한항공 등을 대상으로 한 긴급경영자금 대출에 1조3,000억원이 투입됐다. 금융위원회에서도 수은이 코로나 관련 금융 지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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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지원액만 증가한 게 아니다. 수은은 코로나19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기존에 해오던 정성평가를 건너뛰고 재무제표만 보고 신속하게 대출을 집행했다. 그동안 중단했던 대기업의 운영자금 지원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일시적으로 부활했다.

다만 코로나19로 내년 3월까지 만기가 연장된 대출의 부실 가능성은 방 행장으로서는 고민이다. 만기연장이 끝났을 때 얼마나 부실여신으로 전환될지 불확실하다. 부실여신은 지난해 9월 6,728억원이었지만 올해 9월은 403억원에 그치고 있다. 방 행장은 “내년 3월까지 만기연장을 결정하면서 추가 연장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는데 현재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보면 오히려 초기보다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잠재부실여신을 점검하고 만기연장한 기업을 대상으로 수시테마감리를 실시하는 등 잠재적 부실에 대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 등 항공 업계의 어려움도 수은의 현안 중 하나다. 앞서 수은은 4월 산업은행과 함께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이전에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선지원한 것이다. 올해 10월께 시장 상황이 회복되는 것을 전제로 했지만 현재로서는 내년까지 매출 감소가 점쳐지고 있다. 방 행장은 “욕심 같아서는 지원 프로세스를 신속하게 해서 빨리 안정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피해 규모를 산정해야 하는데 계속 코로나19에 따라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제주항공에 추가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산은과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제주항공은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난에도 제주항공이 기안기금에 신청을 미루면서 기금의 높은 금리가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 행장은 “회생 시간을 짧게 두고 (기업이 자체적으로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하라는 취지에서 금리를 시장금리 수준으로 정한 것”이라며 “정책당국과 지원방안을 협의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따른 수은의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따른 수은의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방 행장은 중소·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 수은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건전성 관리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대출이 증가하면서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비율은 6월 13.45%로 지난해 대비 1.1%포인트 떨어졌다. 그는 “여신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면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게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서 “대손충당금을 미리 쌓아놓아 향후 있을 부실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 기준 수은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230%로 은행권이 평균 130%대를 기록한 데 비해 높은 편이다.

수은이 전 세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마이너스 금리 유로화채권 발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건전성 관리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지난달 발행한 수은의 유로화 3년물은 마이너스 금리인 -0.118%를 달성했다. 유로화채권 외에 5년 만기 미달러화 표시, 10년 만기 미달러화 표시 등 총 15억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했다. 방 행장은 “수은은 채권을 발행해서 대출해줄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수은의 신용도가 나쁘면 이자율이 올라가게 된다”면서 “수은의 신용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게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방 행장은 국책은행으로서 명예퇴직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집중할 방침이다. 수은은 만 56세 직원이 만 60세 정년이 될 때까지 해마다 일정 비율로 연봉이 줄어드는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은 2018년 3.8%에서 2022년 6.7%로 증가하는 추세다. 덩달아 생산성 저하 및 신규채용 여력 감소 등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정년까지 받을 수 있는 돈의 45%만 지급해 명예퇴직을 이용하는 직원도 전무하다. 이에 임금피크제로 1년 근무한 후 남은 3년간 받을 수 있는 돈의 75%를 명예퇴직금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정부에서 사실상 거절했다.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 행장은 “현실적으로 기대되는 소득의 상당 부분을 인센티브로 유인하지 않으면 명퇴자는 적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지혜를 모아 계속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인 노동이사제에 대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바로 채택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직접 이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제도다. 노동이사제의 전 단계로 노조가 추천하는 인사가 이사회 구성원이 되는 노조추천이사제도 있다. 최근 KB금융지주 이사회가 노조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선임에 반대한다고 공식 선언하는 등 금융권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수은은 노조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후보군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방 행장은 “좋은 분을 모시기 위해 후보군을 넓히는 차원에서 노조에서도 추천을 받고 있다”며 “정부의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노동이사제를 채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방 행장은 기획재정부·농림수산식품부·보건복지부 등에서 근무한 정통 관료다. 여러 부처를 거치며 공직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로 그는 ‘주인의식’을 꼽았다. 방 행장은 “내가 오너·대주주라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해왔다”며 “수은에서도 직원 모두가 수은의 대주주라고 생각하고 주인의식을 갖고 문제를 바라봐달라고 얘기한다”고 강조했다.

/정리=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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