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보안 업무를 폐쇄적으로 보는 탓에 보안이 국내 제조업의 약한 고리가 됐습니다.”
정우식(사진) 한국산업보안한림원 초대 회장은 2일 서울경제와 만나 “보안 업무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그동안 기업의 보안 업무가 고립된 섬처럼 폐쇄적으로 이뤄졌다”며 “보안인력 간 네트워킹을 통해 개별 기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야만 산업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한림원의 탄생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기술 굴기’를 내세운 중국은 조선·철강·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주력산업에서 이미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기술 유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그럼에도 지난 2015년부터 6년간 해외로 유출된 국내 산업기술은 총 121건(국정감사 자료)에 달할 정도고 피해기업도 중소기업(80건)과 대기업(33건)을 망라한다. 이처럼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기술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정보원의 제안으로 2018년 출발한 조직이 바로 ‘한국산업보안한림원’이다. 출범 당시만 해도 삼성·현대자동차·SK·LG·포스코 등 5대 그룹이 주축이었지만 이제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45개사가 회원사로 가입했을 만큼 덩치를 키웠다.
한림원은 국정원과 공동으로 매년 ‘산업보안 국제컨퍼런스’를 열고 있다. 기업의 실질적인 보안역량 강화를 위한 것으로 올해는 이달 19일 웹 세미나 형태로 연다. 이 콘퍼런스는 기업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산학연 협력 과정에서 기업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방법 등 생생한 실제 사례와 해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올해의 경우 사전신청자가 벌써 1,500명을 넘겼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활발한 재택근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대책을 중점 논의한다”고 소개했다.
우리 기업의 낮은 보안인식 수준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정 회장은 “현재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143개 회사 중 94%가 보안 전담조직이 없고 86%가 보안전담 임원도 없다”며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는 사뭇 대조적”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정치권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국가핵심기술 보안 전담조직 구성 및 기술 유출 방지를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대목이다.
앞서 한림원은 지난해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을 상대로 2년마다 이뤄지는 정부 차원의 점검에 활용할 목적으로 국정원과 함께 객관적 평가지표도 만들었다. 정 회장은 “총 387개 항목으로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정리했다”며 “보안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어디가 약한지 즉시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100개사까지 회원사를 늘릴 것”이라며 “‘기업 간 보안 관련 정보 공유→상호 학습→대기업 보안역량 업그레이드→협력사 역량 동반 상승’ 등의 선순환이 가능하게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