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하면서 ‘가상 셀러브리티(유명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컴퓨터그래픽(CG)에 인간 성우의 목소리를 덧입히던 수준을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신(新)개념 아이돌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28일 유튜브로 진행된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서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를 공개했다. 에스파는 4인의 인간 멤버와 이들을 각각 본뜬 AI 멤버 4인으로 구성된 신개념 아이돌 그룹이다. 기획 단계부터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세계관과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지적재산권(IP), 퍼포먼스 등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노렸다. 예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능할 때 AI 멤버들은 24시간 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공연할 수 있다. 현재 유튜브에서만 전 세계적으로 가상 셀러브리티 약 1만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가상현실 산업의 시장 규모가 지난 2016년 18억달러(약 2조원)에서 오는 2023년 51억달러(약 5조8,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상 셀러브리티의 발전은 컴퓨터 그래픽과 AI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국내 최초 사이버 가수인 ‘아담’은 20여년 전인 1998년 등장했다. 실존 가수의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고,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마케팅을 한 수준에 그쳤다. 이후 음성합성 프로그램을 이용한 ‘보컬로이드’ 가수들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앞으로 선보일 새로운 AI 셀러브리티는 발전된 ‘자연어처리(NLP)’ 기술이 접목돼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 셀러브리티 탄생에는 완성도 높은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 수준 높은 AI 기술을 개발해온 게임 산업계의 공이 크다”며 “게임엔진 기술로 만들어낸 가상인물은 그래픽 측면에서 피부와 머리카락, 동작, 입 모양까지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말했다.
게임 ‘로스트아크’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는 8월 AI 연구센터 ‘Smilegate.AI’를 설립했다. 엔터테인먼트에 특화된 AI를 제작해 게임·영화는 물론 이종산업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036570) 대표 역시 ‘디지털 액터론’을 설파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영화·드라마, 심지어 아이돌 그룹 역시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액터(디지털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며 “인간처럼 표정을 짓고,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디지털 액터는 앞으로의 도전과제”라고 강조했다.
가상 셀러브리티 산업의 최대 타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26억명의 ‘Z세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Z세대는 가상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인의 2차 창작물을 만들고 공유한다. 아바타 제작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네이버의 가상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ZEPETO)’는 1억8,000만명에 달하는 글로벌 회원을 확보했다. 회원의 80%가 10대다. 제페토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AI 기술과 증강현실(AR) 기술이 접목돼 사진으로 아바타를 제작한 후 현실 카메라를 덧씌워 셀카를 찍을 수 있다. 9월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가 아바타를 활용해 제페토상에서 연 가상 팬사인회에는 4,600만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