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입니다. 소수지분 감사위원이 대표성이 있나요.” 입법 속도전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재계의 호소는 절박했다.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경제 입법현안 공개토론회’는 이른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관련한 민주당과 경제계의 마지막 토론회 자리로 관심을 모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6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회동한 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한 공정경제 3법TF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경제계 인사들과 공개·비공개 간담회를 이어왔다. 이 같은 과정에서 당내 일부 의원들이 상법 개정안의 최대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3%룰(감사위원 선임 시 지배주주 의결권 3% 제한)’과 관련해 수정·보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원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속도감 있게 기업 3법을 추진해 입법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재계는 마지막 호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살리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유 의원은 “그동안 ‘많은 곳’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대한상의·경총·중기·벤처기업협회 등을 거쳤고 마지막으로 이번 토론회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듣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도 공정경제3법의 정기국회 통과 요청이 있었고 현 정부 국정과제에 들어 있기에 입법 성과를 내야 하는 국회는 토론회 내용을 경청해 입법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 의견에 ‘경청’의지를 보이면서도 정기국회 내 처리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이에 대해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본격적인 법안심의를 앞둔 이 시점에서 정치권과 경제계가 문제점을 공개 논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공정성과 기업부담 그 사이에 어디에 선을 그어야 될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핵심을 짚었다. 이어 “해결책이 법뿐인지 규범, 각종 시행령이나 하부 규정을 고쳐서 기업부담을 줄이는 안으로 논의가 모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1부(상법)와 2부(공정거래법)로 나눠 진행됐다. 상법 개정과 관련해 발제를 맡은 박준모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장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 시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과 관련해 3%비율의 기능과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감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할 때 3% 의결권 제한 규정은 우리나라에만 특유하게 있는 제도로 해외 유사 입법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감사위원의 ‘대표성’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은 경우를 사례로 들며 “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위원(감사 이사)이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1 이하의 득표만으로도 이사로 선임된다는 것에서 전체 주주의 대표성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그동안 경제계가 해외투기 자본 등 소수지분으로 감사가 선출돼 경영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짚은 것이다. 권 교수는 이어 “늑대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것처럼 다른 기관투자가와 연계하는 늑대떼(Wolf Pack )전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보완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안도 이어졌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은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주주 의결권을 6%로 확대하는 방안도 의미가 없다”면서 대주주 의결권 한도를 20%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은 제도를 일정 규모의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시행 유예기간을 둔 뒤 나타나는 부작용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절차를 통해 기업들이 대비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도 이 밖에 주주제안 후보 표결 시에 한해 3%룰 적용을 배제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는 이혁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를 통해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전속고발권 폐지”라며 “검찰의 과도한 수사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중견·중소기업의 법 대응능력을 고려한 단계적 집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고발 남용과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 수사 문제뿐 아니라 검찰의 전문성 부족 문제도 지적됐다. 이 교수는 “경제 전문성을 갖춘 공정위와 검찰 간 견제와 균형 방안을 법령으로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익법인에 대한 문제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승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은 “공익법인의 긍정 가치가 훼손돼선 안 된다”며 “긍정적인 기여가 있는데 문제가 있다고 소급적용을 할 경우 재산권 침해뿐만 아니라 공익법인 자체를 사멸시킬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 합산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집단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차단한다는 목적이지만 지나친 법 적용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 원장은 “소급적용을 배제하고, 일정 기간 평가를 거쳐 문제소지가 확인된 기업에 한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종호·변수연·김인엽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