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참 교묘한 ‘편가르기’ 증세

■이철균 시그널부장

전가의 보도가 된 부자증세

핀셋증세로 포장해 매년꺼내

보편증세 카드 버린 지 오래

표밭전술에 조세형평성 실종




지난달 취임한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보편증세’를 화두(話頭)로 던졌다. 신선했다. 표만 좇는 기성정당과는 확실히 달랐다. 껄끄러운 의제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의당 꺼내야 하는데 거대정당들은 이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그의 말을 보자. “세금은 사회 연대적 성격이 강하다. 저소득층이 증세에 참여해야 고소득층도 증세에 더 나선다. 고소득층 증세만으로는 복지확대 구조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옳은 말이다. 진보진영으로서는 쉽지 않은 주제인데 거대정당들의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김 대표의 말대로 소득이 있으면 100원이라도 세금을 내야 복지제도는 더 탄탄해지고 지속한다. 조세의 수직적·수평적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맞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세의 면세자 수는 722만명(2018년 말 기준)이다. 비율이 38.9%로 열의 넷은 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편증세를 정책으로 꺼낼 의도도 없다. 표심이 무서워서다. 대안으로 등장시킨 게 핀셋증세. 고소득자나 자산가, 대기업만을 상대로 한 정교한 조세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집권 후 막대한 돈을 풀어 복지정책을 펴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매년’ 부자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증세카드를 내놨다. 소득세부터 법인세, 종합부동산세를 손질했다. 증세카드를 꺼낼 때마다 당당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을 보자.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렸지만 최고위층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종합부동산세의 비중은 인구 대비 1%, 가구 대비 2%밖에 안 되고 세금 중과대상도 다주택자로서 0.4%만 해당되는 맞춤형 대책이다” 심지어 “소수에 집중하는 조세정책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서민 등을 위한 세제감면액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부자증세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다수(서민)는 깎아주고 소수(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더 받아내니 선거 때도 표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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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증세만으로는 확장재정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을까. 정부 발표에서 그 힘겨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예측치를 보면 내년 법인세수는 8.8%나 줄어든다. 소득세수는 1.5% 늘고 종부세가 54%나 증가해 국세수입은 올해보다 소폭 는다. 그러나 내년 적자 국채 발행액은 사상 최대(89조7,000억원)다. 들어올 돈은 없는데 쓸 돈은 많아지니 결과는 재정수지의 악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 발표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다. 정부의 부인에도 온라인 게시판에는 “결국 증세 목적”이라는 댓글이 넘친다. 증세인데도, 아무런 설득의 과정도 없다. 급기야 후폭풍을 우려해 정부는 공시지가는 90%까지 올리되 6억원(공시지가 기준) 이하 1주택자의 재산세율은 0.05%포인트 낮추는 방안도 냈다. 물론 3년 한시다.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부담은 다음 정부로 넘겼다. 대상 가구가 1,030만호(94.8%)에 달한 만큼 다음 정부도 세율 인하를 중단하기란 쉽지 않다.

6억원의 ‘묘수’까지 꺼냈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증세인데도 설득과 토론 등의 정공법을 택하지 않은 결과다. 무엇보다도 고가주택일수록 현실화율이 빠르다. 수직적 형평성을 위해 더 많은 소득에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누진제도가 존재하는데도 추가로 이중삼중의 부담을 키웠다. 상위 10%는 전체 소득세의 78%(2018년 기준)를 낸다. 급여 소득자도 상위 10%가 74%를 내고 있다. 그런데 또 더 많은 세금을 앞으로 내야 한다. 형평성을 잃은 조세의 말로는 뻔하다.



‘편가르기’ 증세를 했지만 결국 조삼모사다. 첫해는 6억원 이하 1주택자도 세율 인하의 혜택을 보겠지만 2년, 3년 차부터는 대부분 세금을 더 낸다. 설령 세율 인하를 유지해도 공시가격 90%가 완성되는 오는 2030년에는 내야 할 세금이 눈덩이처럼 는다. 1주택의 표심을 위해 6억원의 카드를 꺼냈지만 역풍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셀 수밖에 없다. 2개의 저항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안 보이는가.
fusioncj@sedaily.com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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