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사전투표 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두 후보의 희비가 엇갈리자 양측 지지자들도 덩달아 요동쳤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발표 이후 민주당 지지자들은 “모든 표를 집계하라”고 강력 주장했고, 우편투표는 사기라며 개표 중단을 요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개표를 방해하며 소동을 일으켰다. 올 들어 이미 갈등 수위가 최고조로 올라섰던 미국 사회에 이번 대선이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워싱턴DC 경찰 당국은 이날 새벽 백악관 인근 거리에서 극우단체 ‘프라우드보이스(Proud Boys)’의 엔리케 타리오 단장을 포함한 4명이 칼에 찔려 다쳤다며 사건 용의자 3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 ‘서부 국수주의자’라고 칭하는 프라우드보이스는 올해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 현장에서 대규모 맞불 집회를 열며 유명세를 탄 극우단체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프라우드보이스 소속 회원 2명과 흑인 여성 1명이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 장면이 담겼다. 영상 속 흑인 여성은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베벌린 비티로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구호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가 새겨진 곳곳에 페인트를 뿌리는 행동으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정확한 사건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프라우드보이스는 인종차별 규탄 단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경찰은 피해자의 주장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고, BLM 워싱턴DC 지부 역시 “우리는 흉기 공격과 관련이 없다”며 “프라우드보이스의 거짓말”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사전투표 개표가 시작되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역전하는 상황이 펼쳐지자 일부 트럼프 지지자는 개표소 앞으로 달려가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날 미시간 최대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개표소로 활용되고 있는 TCF센터에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난입한 것이다. 시위대는 건물 정문에서 경찰에 막혔으나 뒷문을 통해 건물로 난입해 개표를 방해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해 상황 수습에 나섰고, 선거 당국은 개표가 진행 중인 방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창문 등을 합판으로 막으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오리건 포틀랜드에서는 바이든 후보의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개표를 끝까지 진행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시내의 상점가 창문을 깨부숴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포틀랜드 경찰 당국은 이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즉각 수사에 나섰다.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했던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투명한 개표 과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했고 경찰은 이를 불법시위로 간주해 해산에 나섰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분열된 사회에서 진행된 시위에서 이런 혼란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인종차별 규탄 시위 대응 과정 중 정치인들이 분열적 언어로 사람들을 자극한 상태에서 대선 이후 유권자의 분노가 폭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선 직전 미국 심리학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68%는 이 같은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이 아주 심각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유권자의 52%가 이렇게 응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이 늘어난 수준이다. 개표 지연과 더불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갈등 상황에 현지 언론 매체는 ‘개표 방송에 따른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법’ ‘긴장 상태를 완화하는 법’ 등의 제목의 기사를 홈페이지 화면에 걸어두는 진풍경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