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미래차’ 전략은 방대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지난달 30일 7개 부처가 합동으로 낸 ‘미래자동차 확산 및 시장선점 전략’ 자료를 보면 50쪽에 댤하는 분량에 친환경차 및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 미래차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언급됐다.
오는 2025년까지 전기·수소차 133만대를 국내에 보급하고 53만대를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목표에서는 미래차 분야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엿보였다. 다소 늦었지만 2030년까지 1,000여개의 미래차 부품 기업을 키우겠다는 선언도 내연기관의 종식을 앞둔 부품업계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어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쏙 빠졌다. 전문가들은 미래 모빌리티의 특징으로 △연결성 △자율주행 △전동화 △공유를 꼽는다. 정부 정책에는 이 가운데 핵심인 공유 서비스가 빠져 있다. 미래 모빌리티는 제조업이 아닌 플랫폼 중심의 서비스로 변모할 것이라는 게 일치된 전망이다. 이른바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aaS)’다. MaaS는 비행기·자동차부터 자전거까지 모든 운송수단의 서비스화를 의미한다. 플랫폼을 통해 검색·예약·결제가 가능하고 차량은 구매하는 대신 공유·구독하며 차 안에서는 쇼핑·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완성차를 정점으로 부품업체가 도열하는 전통적인 피라미드 구조가 깨지고 공유 서비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완성차, 콘텐츠 기업 등이 수직 또는 수평으로 포진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될 것으로 본다. 독일의 다임러가 공유 서비스 업체인 카투고를 설립하고 제너럴모터스·포드·재규어 등이 미국 차량공유 업체 리프트와 손잡은 것도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서다. 현대차도 동남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에 투자했다.
정부는 미래차 전략을 발표한 지 나흘 만인 3일 플랫폼 운송사업자에게 매출액의 5% 또는 운행횟수당 800원을 기여금으로 내게 하는 ‘모빌리티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승차공유 산업의 싹을 밟아버린 것이다. 한쪽에서는 미래차를 외치면서 다른 쪽에서는 미래차 산업을 죽인 셈이다. 권고안 발표 이후 정부 부처 내에 ‘미래차과’와 ‘미래차추진단’을 구성한다고 밝힌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조직 신설’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이다.
글로벌 산업생태계는 플랫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플랫폼이 전투부대라면 제조업은 보급부대다. 둘 중 하나라도 부실하면 필패다. 언제까지 부가가치 창출의 선봉장인 플랫폼 사업을 외면한 채 제조업만 부여잡고 있을 것인가. 반발 많고 귀찮고 표에 도움되지 않는 정책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속셈은 아닌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