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돌봄의 굴레서 잇단 비극… “보호자 번아웃 대책 절실”

조현병 딸 돌보다 끝내는 살해

"실제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못해

스트레스 진단·해소책 마련해야"

지난 6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가족 보건복지부 규탄 및 지원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정부 대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지난 6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가족 보건복지부 규탄 및 지원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정부 대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아무리 조현병을 오래 앓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죽일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지만 솔직하게는 돌봄에서 벗어난 그분이 부럽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번아웃(탈진)’을 호소하며 23년간 조현병을 앓던 딸을 살해한 60대 여성이 최근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에 장애인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돌봄의 무게에 짓눌려 동시에 세상을 등지려 하거나 아이를 본인의 손으로 떠나보내는 보호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발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정부는 늘 예산과 인력 핑계를 대며 미적거린다”며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자포자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고 호소했다.

질환을 앓거나 장애를 갖고 있는 자녀를 돌보는 보호자들이 오랜 돌봄에 지쳐 ‘간병살인’을 하거나 동반자살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비극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공공서비스 확충뿐 아니라 지금까지 등한시돼온 돌봄 보호자들에 대한 심리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법원은 조현병을 앓고 있던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여성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1997년 중학생이던 딸이 조현병 등의 질병을 앓게 되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3년간 딸을 돌봤지만 딸의 증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던 A씨는 끝내 자고 있던 딸을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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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번아웃 증후군은 한 가지 일과 업무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하지만 최근 가족 돌봄을 하던 보호자들이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A씨 딸의 병원 진료기록에도 A씨에 대해 ‘번아웃 상태’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번아웃 상태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원인이 되는 행동과 업무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보호자들은 돌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강복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외협력이사는 “마음 편히 마트나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나는 상황에서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는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상황이 악화하고 있지만 돌봄 보호자들을 위한 지원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부모들을 위한 커뮤니티와 심리치료 등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 돌봄 부담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확한 위험진단에서 비롯된 공공서비스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돌봄 보호자들이 사실상 방치돼왔다”며 “짧은 기간도 아니고 무기한으로 돌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가정마다 보호자와 장애인·환자 등의 상태에 맞춰 정확한 위험요소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며 “진단을 바탕으로 복지서비스가 진행돼야 하고 심리상태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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