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한두 패권국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초국가적 문제가 부각될수록 각국의 협력적 리더십이 더욱 필요합니다.”
국제관계 분야의 석학인 조지프 나이(사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12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팬데믹 시대의 소프트파워와 공공외교’를 주제로 주최한 ‘공공외교주간’ 기조강연에서 “코로나19 대응역량을 보여준 한국을 포함해 미국·중국·유럽·일본 등이 협력적 관계를 통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팬데믹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나이 교수는 하버드대 케네디대학원장, 미 국무부 부차관, 국가정보위원장,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 ‘소프트파워’ ‘권력의 미래’ ‘국제분쟁의 이해’ 등으로 잘 알려진 외교·안보 전문가다.
이날 온라인으로 강연에 나선 나이 교수는 ‘권력의 미래’에 담은 국제정치 이론을 인용하며 현재 팬데믹에 따른 초국가적 문제를 다루는 권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력에서는 아직 미국 ‘일극체제’이고 경제력은 미·중·유럽·일본 등 ‘다극체제’지만 국가를 초월하는 문제에서는 넓게 권력배분이 일어난다”며 “팬데믹 대응에 국제공조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패권국인 미중의 코로나19 대응과 외교에는 낙제점을 줬다. 그는 “중국은 내부통제에는 성공했지만 미국·주변국과의 갈등으로 공공외교 면에서 한계점을 보였고 미국도 코로나19 상황을 무시하고 남 탓만 했다”며 “양국 모두 부실한 초기대응과 협력 부재로 소프트파워가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나이 교수는 국익을 위한 외교 방향이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갈 때 국가 소프트파워가 상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통제를 벗어난 초국가적 문제에는 권력을 ‘지배하는 권력’에서 ‘함께하는 권력’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이런 변화 속에서만 팬데믹 이후 미중의 소프트파워가 회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익 우선이 당연하지만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는 ‘국익 개념론’도 꺼냈다. 그가 뽑은 좋은 국익의 사례는 ‘마셜 플랜’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유럽국가에 거액을 빌려줬지만 돈을 제대로 못 받고 채무조정만 거듭한 결과 1930년대 유럽의 붕괴를 맞게 됐다. 이에 당시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유럽 재건을 강조하며 차관·채무면제 등 지원책으로 유럽의 안정과 성장을 이끌었다.
나이 교수는 “국익 정의의 폭으로 나타나는 차이는 극명하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조하는 편협한 ‘거래적’ 정의의 국익은 미국은 물론 동맹국들에도 이롭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팬데믹을 잘 대처한 나라들의 특징은 신뢰와 협력정신이라고 규정했다. 또 한국이 강조하는 ‘K방역’에 대한 적극적 홍보가 공공외교 면에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이미 한국의 대응을 보며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며 “사회통제와 주변국 갈등을 겪는 중국과는 차이가 있는 만큼 ‘K마스크외교’에 나서더라도 역효과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도가 좋더라도 편협한 국익을 위한 수단은 결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 시대에 국가 역량과 협력이 그 나라의 소프트파워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