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기살려줘도 부족한데 옥죄기만...中企 "차라리 한국 떠나고 싶다"

[中企 신용강등 쓰나미 온다]

중대재해처벌·52시간 계도 만료 등

기업 의지 꺾는 법·제도만 수두룩

내년 대규모 폐업·실직사태 우려

울산 북구 연암동에서 경매로 나온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공장 내부 모습. 칠판에는 납품 계획이 쓰여져 있다. / 울산=양종곤 기자울산 북구 연암동에서 경매로 나온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공장 내부 모습. 칠판에는 납품 계획이 쓰여져 있다. / 울산=양종곤 기자



한 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 A씨는 최근 충남 당진의 납품처가 문을 닫은 것을 보고 ‘올 게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직원 20여명을 둔 비교적 건실한 파이프 제조업체였지만 수년간 거래관계를 유지해 온 A씨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A씨는 “이미 지방 산업단지에는 폐공장이 수두룩하다”며 “내년부터 300인 미만 중소기업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면 폐업이 더 늘고 대규모 실직사태가 일어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경영 환경을 맞은 중소기업이 내년부터 적용될 ‘기업 옥죄기’ 법과 제도에 실신할 정도다. 현장 중소기업 대표들은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16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이 1년 시행 유예를 집요하게 요구해온 300인 미만 기업의 주 52시간 제도가 예정대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단체들이 여당 대표 등을 만나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절적 성수기나 고질적인 인력난을 고려할 때 상당수 업종은 주 52시간제 자체를 적용할 수 없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추가 유예는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기 간에 납기단축 경쟁이 붙어서 야근·잔업을 해야 살아남는 게 현장 상황”이라며 “기업들은 주 52시간제에 맞춰 인력을 더 늘리기보다 차라리 자동화 설비를 들이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악재’는 널려 있다. 집권 여당이 추진하는 근로자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업주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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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처벌수준을 담은 법안이고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현장보다는 법원에 갈 일이 늘어나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악법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설명이다.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내부 변호인단 등이 꾸려져 있어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인력 부족으로 각종 고소·고발에 대한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특히 중소기업은 대표가 경영을 주도하는 시스템이어서 대표 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은 대기업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담합 등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현실적인 유혹이 존재하는 현실을 감안해 공정위가 고발권을 가지도록 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의 기업 부담을 낮추는 특례지원기간 종료도 중소기업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격려를 해도 부족할 상황인데 오히려 사기를 꺾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유지지원금 특례지원이 끝나면 “내년부터 지원금 감당이 안 돼 대량실업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걱정이다. 실제 하나투어 등 대형 여행업체들도 고용유지지원금이 종료되자 전 직원을 상대로 무급휴직을 연장하는 등 사실상 감원 수순에 돌입했다.

여기에 초과유보소득 과세나 화학물질관리법 정기검사에 이어 내년 3월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의 원리금상환유예 종료도 중소기업 경영의 목을 죄고 있다. 더구나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수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물건을 운반할 선박도 부족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대표들은 너도나도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경영을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지난 1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최근 40년 업력의 원로 기업인으로부터 ‘중소기업을 자꾸 옥죄는 법이 나와 사업을 못 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며 “심지어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현장의 애로를 전달했다.

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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