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증시가 상승 랠리를 이어가면서 자사주를 팔아 현금을 챙기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 특히 상당수는 2차전지 등 신성장 산업이어서 유동성 확보를 통한 신규 사업이나 시설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상장사들이 구체적인 자사주 처분 목적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이뤄진 자사주 처분 공시 87건 중 절반 이상인 53건은 유동성 확보 혹은 신규 투자 등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153건 중 대부분인 87건의 자사주 처분이 스톡옵션 행사나 임직원 보상, 소각 등의 이유로 단행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자사주를 팔아 현금을 확보한 상장사는 차입금을 상환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토지나 건물, 기술 투자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최근 자사주 처분에 나서는 기업들은 대부분 반도체나 2차전지·친환경에너지·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에 소속된 중소형 상장사다. 성장 산업인 만큼 신규 투자가 필요하지만 최근 여러 테마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했다는 점에서 자사주 처분은 주가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올해 주가가 25배 급등한 신풍제약은 2,154억원의 자사주 처분을 공시하면서 주가가 6거래일 연속 급락해 35%나 빠졌다. 이외에도 2차전지 업체 나인테크는 이달 제품 생산을 위한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43억원 규모의 자사주 처분을 공시했고, 이후 이틀간 주가는 5% 빠졌다. 한 대형증권사 연구원은 “최근의 주가 상승세는 기업에 신규 투자 자금 등 현금 확보의 기회이기도 하다”며 “이를 모두 악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장기투자자라면 기업이 확보한 현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검토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자사주 처분이 기대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업체 에스에프에이는 9월 1,009억원 규모의 자사주 처분을 공시했지만 다음날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 처분 대상이 최대주주라는 점에 사업 다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장열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특수관계인에게 자사주를 매각하는 것은 회사에 자금이 유입되고 일반적인 자기주식 처분 시와 같은 시장 출회 등의 우려가 사실상 사라지게 돼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식각장비 전문업체 에이피티씨도 이달 5일과 9일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연달아 각각 27억원, 20억원 규모의 자사주 처분을 공시했다. 그럼에도 최근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관련 소재·부품·장비 업체의 수혜가 예상되면서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